이런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긴글]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왕따|폭력]마인드카페 네이버블로그 링크마인드카페 페이스북 링크마인드카페 유튜브 링크마인드카페 인스타그램 링크마인드카페 앱스토어마인드카페 플레이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앱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플레이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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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긴글]
커피콩_레벨_아이콘히룽롱25
·한 달 전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중반 여자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야기를 써볼 건데요 길수도 있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우선 저희 가족은 나,오빠,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 인데요.. 저희 집안은 가난했습니다 친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이혼을 하셔서 할머니는 원래 살던곳에서 사시고 할아버지는 서울에 사셨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제가 2살 오빠가 4살때 이혼을 했고 그래서 할머니 오빠 아빠와 살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일찍 저를 낳아서인지 사고를 많이 치셨습니다 제가 유치원 어린이집때 교도소에 많이 계셨었고 그 이유는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빠와 할머니와 살았지만 할머니는 배움이 적으셔서 사회를 잘 모르셨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오빠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아빠가 돌아오셨고 공사장에서도 일하시고 그냥 막노동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때 저는 아빠에게 ***? ***을 당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었고 교도소라는 곳이 어떤곳인지 인지도 안됐던 그때라 그냥 아빠랑 노는게 아빠가 음식은 잘하셔서 아빠가 음식을 해주는게 좋았고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그냥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싶어서 그래서 아빠가 하라는거를 했던거 같아요 저를 안아주셨을때 그곳을 잘못하다가 제가 발로 닿았는데 그뒤로 였나 수위가 점점 쎄졌습니다 삽입은 물론 그 이상의 행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이상하다 생각은 안들었고 하기싫다 하지마라 라는 말은 못했습니다 아빠니깐 그래도 아빠고 난 아빠를 좋아하니깐.. 그러다가 학교 선생님이 아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게 잘못된건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더 깊게 들어가지면서 저는 아동경찰관님이랑 이야기 하면서도 이걸이야기 하면 아빠 잘못되는거냐고 아빠 아무 잘못 없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리니깐 어른들의 말에 이끌려 상황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니 아빠는 아동***으로 교도소에 7년인가 있으셨고 저는 쉼터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1년 동안 있었던거 같아요 저는 어릴때부터 비만이였고 어린나이엔 더더욱 살이찐게 친구들 사이에선 놀림거리였고 타지역으로 갔다보니 전학을 했어도 그속에서도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항상 밝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어른들은 착하다 항상 밝아서 좋다.. 그런데 저는 그런말들이 힘들었거든요 여기서 내가 힘들어하면 어른들 마져도 저를 안좋아할거 같았거든요 그렇게 쉼터에서 나오게 되면서 저는 할머니 오빠랑 살게 되었어요 아마 오빠도 알았겠죠? 근데 그땐 가족에 대한 수치는 없었어요 그때도 아 내가 말만 안했으면 아빠랑 같이 있었을텐데라고.. 생각할 정도 였으니깐.. 그러다가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때였을거예요 친오빠가 카톡으로 자냐 뭐하냐라고 연락이 왔고 아무것도 안한다라고 답했던거 같아요 그러다가 오빠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되냐 이래서 어떤건대 라고 하니 정말 자기는 남자고 여자가 궁금하다 그냥 한번만 보고 싶다 자기방으로 오면 안되냐 그러더라구요 저는 정말 그때 당연히 수치심이 들어야 마땅할건데 가족이니깐 내가 그걸 안해주면 이사람이 싫어할거니깐 이라는 생각에 처음엔 고민하다가 결국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보여주기만 하면 되냐라니깐 만져도 보고 싶다 이래서 만지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상을 원했지만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두번째 가족에게 ***을 당했습니다.. 그러고 저는 중학교에 올라갔습니다 그때에도 저는 왕따를 당했습니다 단순히 뚱뚱하다는 것만으로요.. 많은 기억은 없지만 제가 중학교때 처음 친해진 친구가 있는데 그친구는 거의 학교를 나오지 않고 일진도 아닌데 그냥 학교를 안나오고 나와도 혼자노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다가 그친구네 부모님이 노래방하신다는걸 알고 가끔씩 주말에 제가 도와주곤 했습니다 근데 거기가 살짝 학생들이 와서 몰래 술마시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암튼 그런곳이였는데 어느날 제가 안좋아하는 일진 무리 언니가 왔습니다 카운터에 앉으면 정면에 살짝 그 안이 보이는 창문이 있는데 배터리 없다면서 카운터 앞에 충전기에서 충전 하는척 하면서 페메(페이스북메세지) 를 하는데 그 어플만의 사진찍는 소리가 있는데 저는 앉아있고 그사람은 서있으니 각도가 당연히 사진찍으로 위로 향해야 맞는건대 저를 향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수십장의 찰칵소리가 난 뒤 충전기를 빼서 가지고 가더라구요 그 창문 사이에 딱 비친 모습이 제 사진을 다른 사람한테 보내는거였어요 그때 제가 무슨 자신감이였는지 다시 충전하러 오면서 또 사진을 찍을때 지금 저 찍는거죠 라고 하니 아닌데? 하면서 친구들이랑 웃더라구요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일이 생깁니다 어떻하다가 그렇게 된지 모르지만 철없던 나이에 일진 무리가 좋아보여 겉멋들어서 일진에게 연락오는 것이 무서우면서도 먼가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한 학년 오빠였는데 그때가 아마 빼빼로 데이 그런날 쯤이였던거 같아요 그러면서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그사람은 그냥 학교에서 일진 그런게 아닌 그 이상의 학교에서 사고 치는게 아닌 밖에서 사고 치던 사람이더라구요 그사람이 사는곳은 조금 외진곳이였어요 버스타고 20분 가아했거든요 근데 자기가 와달라는거예요 그래서 저는 저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냥 마냥 좋아서 가게 됩니다.. 선물도 주고 그러는데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는거예요 저는 처음엔 싫다고 했지만 강하게 거부는 못했어요 그사람이 날 좋아하니깐 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더큰 생각은 여기서 싫다고 하면 이사람이 나를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게 할까라는 생각때문에 집에서도 아닌 밖에서 하게 되었어요 그러고 주말이였다가 일요일에 문득 너무 무서운거예요 어린나이니깐 살도 있어서 생리도 정확하지 않았기에 너무 무서워서 위클래스 선생님께 연락을 해요 이러이러한 상황이 있었다.. 너무 무섭다라고 했지만 사후피임약은 48시간인데 이미 그시간은 지났더리구요.. 그러다가 월요일에 선생님이랑 대학병원에가고.. 이런 이야기만 들으면 너도 좋아서 했는데 그걸 말해? 라고 할수 있지만 그 오빠는 담배를 폈는데 저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어요 라이터로 이거 너 얼굴에 대줄까 하면서 얼굴에 가까이 한다던가.. 학교에 이야기 하지말라라고.. 그래서 무서워서 선생님께 이야기 했던거 같아요 그래요 만약 제가 어릴때 그런 짓을 안당했으면 상황이 달랐을수도 있겠죠... 그때의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무서웠던건지 정말 나도 즐긴건지..... 그러다가 제가 선생님께 이야기 한게 그 오빠한테도 알게 된거예요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려서.... 안그래도 왕따 당하던 저인데.. 그게 다른 사람까지 알게 되어서 중학교 2학년때 복도를 지나가면 ***다 김치냉장고다..이런 소리는 기본이였고 뚱뚱하다보니 별의 별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같은반친구인데 제가 호감이 간친구인데.. 그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너 그형이랑 했는데 그거 쌤한테 말했다며? 그소리 듣는 순간 얼어붙었어요 그친구도 일진 무리였거든요... 그러면서 제 위로 제 아래로 그리고 저희 학년까지도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오히려 저보다 어린 친구가 저를 대놓고 눈치주는 것도 있었고.. 그래도 몇달만 참으면 3학년이고 그사람 볼일 없으니깐.. 이라는 생각으로 그냥 다녔어요 그러다가 그사람이 졸업하고 고등학교중에 좀 공부 못하는 사람만 모아놓은곳에 들어가게 되고 저는 3학년이 되었죠.. 친한친구라고는 반에서는 없었고 우연히 알게된친구랑 밥도 먹고 그냥 놀고 그랬어요 그냥 끼리끼리였던거죠..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가야하는데 제가 공부를 잘했던것도 학교를 잘 다녔던것도 아니였어요 머만하면 지각 무단지각 이런게 많았거든요.. 그래서 갈수 있는곳이 그사람 다니는 학교였어요 위클래스 선생님께서는 거기 가는 것보단 근처 타지역 여고를 가는게 어떠냐 하면서 말해주셔서 저도 나쁘지 않아서 그렇게 한다고 했어요 여고고 기숙사다보니 저에게는 새로운 환경이였어요 하지만 따돌림은 아니지만 거기는 원래 그 지역 여중애들이 많이 와서 아는사람은 다 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반에 많아봐야 20명도 안되서 두루두루 친했어요... 그렇게 저에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20살이 되었을때 아빠를 볼 수 있었어요 아빠는 몇년동안 그곳에 있으시면서 저에게 편지를 엄청 많이 써주셨어요 면회도 몇번 가긴 했지만 그때마다 아빠 얼굴을 제대로 볼수가 없었는대 아빠는 저를 보는 눈빛이 정말 미안한 눈빛이였어요 안쓰러웠어요.. 그렇게 20살이 되고 아빠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어요 엄마는 아빠가 교도소 다녀온건 알지만 그 이유가 저라는걸 몰라요 엄마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대 예전엔 술만 마시던 아빠가 술도 안마시고 제대로 사시는거 같았어요 저랑 아빠랑 띠띠 동갑이예요 그런데 새엄마(?)는 저랑 띠동갑 아빠랑도 띠 동갑이예요 근데 첫 인상이 술집에서 일할거 같았어요 젊어서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릴때 그런일을 겪고 커서 그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하나둘씩 배우다 보니 먼가 촉이 그랬어요... 그치만 새엄마는 저한테 너무 잘해줬어요 그리고 사실 저는 할머니손에 자라서 엄마의 느낌, 그리움을 몰랐지만 정말 좋았어요 이런게 엄마의 역할이구나 싶기도 했구요... 근데 저는 말했다시피 뚱뚱해요..그럼 살빼면 되는거 아니냐 하면서도 마음처럼 안됐어요.. 그렇게 20-22살때까지는 편의점 식당 알바를 했건거 같아요 수급자였어서 그리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라도 사람들 만났어요 제 주변엔 좋은 어른들이 많았어서요.. 그러다가 제가 주변친구가 없다보니 게임에 빠지게 되었어요 마이크를 하면서 하는 게임인데 그사람들은 제가 목소리가 좋대요 저는 이해 안갔거든요 이렇게 뚱뚱한데..그때 100키로 초반이였으니깐.. 그런대 맨날 같이 연락하고 전화하면서 게임하면 호감이 생기더리구요 그래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돌아오는건 결국 외적인걸로 그사람이 상처줬어요 그치만 한번으론 저에게 타격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냥 남자가 고픈것보다 사람자체가 외로웠기때문에... 제가 게임을 못하는것도 아니여서 주변에 남자가 많이 꼬이더라구요.. 목소리 좋다 너는 목소리가 여리여리하다 이쁠거 같다.. 귀엽다 라고 듣는게 처음엔 좋다가 상처 받는 일이 많아지니깐 그런소리가 힘들더리구요 어차피 만나면 달라질텐데... 라면서 더 먹기 시작하고 그냥 인터넷 생활만 시작한거 같아요 그렇게 24-25살을 인터넷에 갇혀 보냈어요 엄마 아빠는 타지역에서 일을 하시는데 정확한 일이 뭔지 몰라요.. 오빤 20살때 독립하고 할머니랑 저랑 20살때부터 계속 쭈욱 같이 살았어요 그때 당시에 그 집을 고등학교땨부터 25살때까지 같이 살았으니 그집을 오래 살았죠.. 뭐든 할머니가 다 해주셨어요 빨래도 청소도.. 몸이 커진 만큼 저는 하는 일이 귀찮아졌고 그냥 알바 한거 가지고 배달 ***고 게임하고 그냥 게임쟁이였어요.. 그땐 몰랐지만 할머니랑 같이 살았어서 편했어요 근데 이번 여름에 그집이 끝나면서 저는 독립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제가 30살 되어도 할줄 아는게 없을거 같더라구요.. 그러면서 할머니도 혼자 사시고 저도 혼자 살게 되었어요 집은 거의 5분거리? 도 안되는거 같아요 지금 몇달동안 살아봤는데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락하는 친구도 없고.. 넷상에서 친해진 친구도 제가 먼저 안하면 연락이 안와요.. 실제 친구들도 아예없어요.. 엄마아빠는 연락이 안와요 물론 제가 먼저 할수 있겠죠.. 그런데 맨날 바쁘셔서 전화 안받을때가 많아요 이제 저의 최근 감정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전혀없고 오히려 그런말하는 사람 보면 한심했어요 그런데 외로워서 그런건지 혼자 사니깐 별의 별 감정이 다 들더라구요 20대 초까지만해도 엄마아빠가 특히 아빠가 정말 연락도 잘해주시고 자주자주 왔었는데 이젠 신경도 안쓰는거 같아요.. 제가 코로나에 걸려서 엄청 아플때도 연락 없었고 독감에 걸렸는데 할머니께만 말씀드렸지만 할머니가 아빠한테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 연락 한통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엄마한테 연락 왔는데 병원에서 뭐래 이러셔서 독감이래요 하니깐 그러니깐 밖에 돌***니니깐 그렇지라고 하더라구요.. 주변 사람도 없고 믿고 있던 가족 마저도 저에게 관심이 없다보니 힘들어요.. 그러면서 후회하게 되는거 같아요 나는 정말 아빠를 좋아했는데 아빠가 뭘 할때마다 걱정되고 잘못될까바 무서웠는데 내가 정말 힘들고 아플때 왜 옆에 아무도 없지 라면서 온갖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혼자살면 청소도 밥도 잘해먹을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예요 맨날 배달 음식에..그거 다먹지도 못하면서 시켜놓고 다 버리고 모아놓고..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정말 잘 살아오지 못했구나 예전엔 죽고싶다라는 생각이 아 정말 이런인생 너무힘들어서 죽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 버텼지만 이제는 하 죽으면 어떻게 될까 똑같을라나 생각을 하는거 같아요 너무 힘든데 이런거 이야기 할곳이 없어요... 그냥 하소연 같은거예요... 도와주세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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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Santa
· 22일 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와 비슷한 일들이 많은데.... 마카님 이야기도 들었으니 제 이야기를 조금 간단히 올려드릴게요. 저는 6살까지 섬에서 살았어요.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일 때문에 바쁘셔서 서울, 대전, 대구로 많이 이사다니셨었다고 해요. 7살이 되던 해에 어머님께서 저를 데리고 대전으로 왔어요. 처음 다녀본 유치원에 처음 온 도시라는 곳의 느낌도 알았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친구들이 저를 싫어하거나 따돌린다는 느낌을 많이 빋았어요. 저는 왜 그런지 전혀 아유를 모르다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알게 되었어요. 친구들이 저를 따돌렸던 이유를.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여름, 어머님께서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아버님의 이야기를 되게 조심스러워하면서 꺼내셨어요. 제 아버님은 폭력, 상해, 특수폭행, 살인 및 살인교사의 혐의로 제가 어린 시절에 돈을 벌러 도시에 있다고 들었던 때에 교도소에 있었으며, 대전으로 어머님께서 데리러 온 이유는 아버님께서 대전 교도소에 수감중이셨기에 수발 들기 편하여 이곳으로 정착한 것아었어요. 이 사건이 초등학교 시절에 학부모들에게 퍼져서 제가 따돌림 받았던 거였습니다. 저는 이런 아버님을 너무나도 싫어하였고, 친절하게 묻는 말에도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화를 냈어요. 그러다보니 가정폭력은 기본이었고, 학대도 당했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사람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분노에 가득 찬 생각에 그저 공부만 했었습니다. 전 어머니의 영향으로 공부는 굉장히 잘했었어요. 그리고 아버님의 일까지 겹치니까 제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저 사람을 벌 줄 수 있는 권력과 명예를 가지자. 그 신념으로 저는 서울대 법학과에 합격하였고, 사법시험에 통과하여 검사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범죄 사건을 담당하는 부서로 가게 되었는데, 저와 비슷한데, 저는 남자니까 그런지 몰라도 그 피해자는 여자라서 성적 학대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피의자인 아이의 아버님을 조사하면서 구형을 세게 때리고 싶단 생각에 피해 아동을 심리적으로 많이 내몰았습니다. 결과는...... 사실 많은 성범죄 피해자분들이 경찰과 검찰 조사를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유는 심리적 압박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피해자 전담 변호사라는 것이 있어서 많이 줄었지만, 제가 검사였을 당시에는 많이 심했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죄책감을 지고 결국 사표를 제출하고 성범죄 피해자 전담 변호인으로 활동했었습니다. 제가 가정폭력으로 제 아버님을 감옥에 보낸 적이 있는데, 나오고나서 5년 동안은 연락도 잘하고 지내다가 점점 뜸해지더라고요. 저는 드디어 사람답게 살고 계시는구나 싶다가도 예전 기억들이 떠올라서 아예 연락을 끊고 살았었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에 할머님께서 103세의 연세로 사망하시고, 2022년 2월 6일에 제 아버님께서 위독하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는데, 아버님께선 제 손을 잡고 어릴 땐 정말 미안했다. 생각을 고쳐먹고 연락을 더 하면서 지내고 싶어도 네가 피하니 방법이 없으며, 내가 너에게 진 죄의 무거움이 잊혀지지 않아서 연락조차 꺼리게 되더라. 그래도 네가 먼저 해즐 수 있지 않았냐? 어떻게 이렇게 모른 척을 하면서 살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고, 저는 그에 대한 답으로 먼저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은 당신에게도 문제가 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10일 후, 아버님께서는 뇌암 말기로 결국 72세의 나이에 사망하셨습니다. 제가 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마도 죄책감을 가지고 계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본디 연락이라는 것은 기다리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저희 아버님은 10남 8녀 중 셋째였으며, 저와는 35살이나 차이나고, 결혼도 꽤나 늦게 하셨습니다. 마카님께서 괜찮다고 하면 저처럼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을 읽을 날이 언제일지는 몰라도 부모님께 연락드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