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없으면 마무리될 이야기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폭력|수면|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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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없으면 마무리될 이야기
커피콩_레벨_아이콘feillo
·3년 전
가부장제에 찌든 아버지는 오빠에겐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학업에 대한 기대는 모조리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특목고에 입학했습니다. 일본 유학 시험에서 꽤 괜찮은 성적을 얻었지만 돈이 없어 가지 못했습니다. 3년 내내 세로로 된 일본어만 보다가 20살이 되어 수능을 준비하는 건 아주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들은 수많은 폭언과 비하에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악으로 공부했습니다. 나는 아들이 아니니까, 공부가 아니면 부모의 자랑이 될 수 없으니까, 이미 내 유학 뒷바라지에 많은 돈이 들었을테니까, 나는 그들의 통장을 갉아먹는 한낱 쥐새끼와도 같았으니까. 억울하고 분하다가도 이렇게는 못살겠어서 죽지 못해 사는 기분으로 재수생활을 버텼습니다. 기분이 나쁠 때마다 접시를 깨고, 쓰레기통이며 콘센트를 발로 차시던 아버지. 가장이 퇴근했는데 어떻게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냐던 아버지. 기분이 나쁠 때마다 괜히 거실에서 크게 욕지거리를 뱉던 아버지. 깨진 쓰레기통을 보며 저게 언젠간 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3교대 공장 근무를 다니시던 어머니와 함께 방을 썼기에 스탠드 불빛을 무릎담요로 칭칭 감고, 그렇게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재수생활을 보냈습니다. 사교육 없이도 나름 괜찮은 지방 국립대에 갔습니다. 전액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기 위해 1학년부터 술 마시고 노는 삶은 포기했습니다. 도서관과 기숙사를 오가며 새벽 4시에 잠이 들고, 9시 수업을 들으러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몹시 멀쩡했던, 2019년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께 털어놔봤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일이 힘들어 예민했던 것 뿐이라고, 사람을 때릴만큼 못된 사람은 아니라며 저를 달랬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가장이 올 동안 설거지가 되어있지 않다고 그릇을 집어던져 깨뜨리고, 그저 본인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크게 욕설을 뱉고, 자식을 보고도 기분에 따라선 ^^ㅣ발ㄴ이라고 하는 사람이 정말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재수를 결심했던 2018년 12월의 저는 그후 수면유도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약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수면유도제를 샀습니다. 약기운에 아침이 힘들 걸 알았지만 언제 아버지가 화를 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도통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경상도에 사는 저는 충청도 소재의 대학에 붙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술 없이 잠든 날들이 1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2주일 정도밖에 안 됩니다. 곧 종강이 다가올 12월이지만, 아빠는 여전히 폭언과 비하를 서슴지 않고, 엄마는 여전히 아빠를 용서하며, 저만 덩그러니 남겨진 상태입니다. 일본에 취직한 오빠는 원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 능통한 사람이라 자리에 있었어도 딱히 아버지의 말을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전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아닌 자가 사랑받고 예쁨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늘 사람들이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때문에 전 주위 사람들이 제게 건내는 말 하나하나가 아주 무겁게 느껴집니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의미부여를 하게 됩니다. 그게 설령 절 향한 비난과 욕설일지라도요. 하지만 이젠 좀 지쳤습니다. 툭하면 남의 자식과 비교하여 저를 까내리려는 것도, 옛날에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었단 이야기를 하면 왜 다 끝난 얘길 굳이 가져와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냐며 제 탓을 하시는 것도, 언제 문을 부술 듯 두들길지, 큰 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며 욕을 하진 않을지 걱정하는 것도. 저는 견뎌낼 자신이 없습니다. 오늘은 기제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가장이 돌아왔는데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4시간이 넘도록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제사 음복도 안 자시더니 갑자기 라면을 먹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다 비운 그릇은 싱크대에 던져져 산산조각 났습니다. 주방 바로 옆에 있는 방에 살고 있는 저는 오늘 처음으로 코로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비염 때문이 아니라 정말 숨차게 달리기를 한 것마냥 곧 죽을 것처럼 호흡이 세차게 쉬어졌습니다. 밖에선 아버지의 고함과 욕설이 들렸고, 저는 16살부터 지금까지 아버지가 화낼 때마다 눈물을 흘립니다. 오빠도 해외에 있고, 방관자인 어머니는 절 도와줄 리가 없으니 그냥 저만 사라지면 될 것 같습니다.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지면 제아무리 잔디밭이라도 죽겠죠. 창문을 열고 아래를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이 집에서 사라질 수만 있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4시간이 넘도록 아버지의 욕설을 들으며 새벽 내내 시끄러워진 심장을 다독이며 잠을 설쳤습니다. 눈을 감았지만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현관 밖으로 나가셨고, 이제는 어머니까지 제 방에 와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이럴거면 이혼을 하던가, 고시텔이라도 잡아주던가, 아버지를 영원히 정신병원에 집어넣던가 셋 중 뭐라도 되면 좋겠지만, 가장 빠른 건 역시 추락일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패륜일지도 모르지만 제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면 전 그냥 불효막심한 천하의 나쁜ㄴ이 되겠습니다. 다 읽어보실지 모르겠으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들다신체증상스트레스우울불면무서워호흡곤란슬퍼스트레스받아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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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SJYS
· 3년 전
다 읽었어요... 중간에 호흡이 세찬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따라 쉬기까지 했어요 ㅠㅠ 게다가 저도 지금 경상도에서 지내고 있어서 제 이야기인 마냥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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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SJYS
· 3년 전
글쓴이님만을 위한 아름다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패륜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쓴이님의 잘못이 아니었잖아요. 저는 악착같이 집을 나와 기숙사에 들어가고 자취를 하기위해 공부도 하고 알바도 했어요. 저도 충청도 소재의 국립대를 나왔는데 다행히도 국가장학금이 도와줘서 제 생활비랑 학비 조금 정도만 벌면 됬었죠. 핸드폰 요금조차 나는 내돈으로 내는데 동기들은 용돈 50만원씩 받고 모자라서 저한테 돈을 빌리더라고요ㅎㅎ 너무 차이나는 생활에 엿같았지만 집 나와 사는, 그 하나만으로 행복했어요. 학교 주변 자취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연애하고 제 청춘을 제맘대로 보냈어요.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글쓴이님이 글쓴이님을 위해 살아간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나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위해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