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미래가 어둡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중독|고민|결핍]마인드카페 네이버블로그 링크마인드카페 페이스북 링크마인드카페 유튜브 링크마인드카페 인스타그램 링크마인드카페 앱스토어마인드카페 플레이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앱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플레이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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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 미래가 어둡다.
커피콩_레벨_아이콘Weathering
·4달 전
항상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있고 내 스스로가 결핍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미성숙하고 미완성된 인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부류의 사람. 인간 관계를 깊게 나눌 수도, 지속할 수도 없는 반 사회적이고 비 사회적인 인간. 스스로를 끊임없이 고쳐보려 애썼고, 다른 이들의 기준을 학습해 보았지만 내 자신이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곧잘 들곤 한다. 그게 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교성이 좋지 못 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고,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걸 좋아하는 아이. 가끔씩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리 잘 어울리지 못 하고 곧잘 붕 뜨곤 하던, 하지만 그래도 괴롭힐 이유까진 없어 왕따까진 아니었던... 그 인생은 10살을 겨우 넘겼을 무렵 급격히 바뀌었던 것 같다.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간 아버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까지 일을 하던 어머니. 아직 어렸던 누나와 동생, 그리고 나. 아이들을 납치해서 가두곤 한달간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신병동에 가두었었다. 어머니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병동에서 나오는데 성공했었지만, 이미 너무 지쳐있었고 또 그 일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서서히 미쳐갔던 것 같다. 아니,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집안일은 방치되기 시작했다. 집 천장이 주저앉고, 비가 새고, 벽에 구멍이 뚫려 바람이 새어들어오고, 보일러가 고장나고, 길고양이와 쥐, 벌과 개미, 바퀴와 파리, 지네가 돌***니는 집에서 살았다. 썩은 쥐와 고양이의 시체를 집에서 치우기도 하고, 자다가 개미와 벌, 지네에 물려 깨어난 적도 있었다. 주방의 음식은 썩어 곰팡이가 피기 일쑤고, 버려지지 않은 쓰레기 봉투에선 구더기가 들끓는게 예사였다.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는 집에서 살았으니, 그나마 교복을 매일 세탁해서 입어도 얼룩이 생기는 것은 일상이었고, 악취가 난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당연히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었지. 이해한다. 나 같아도 싫어했을 거다. 그 당시에도 이해했다. 또 미안했고.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잠들었다가도 툭하면 깜짝 놀라면서 깨기 일쑤였고, 자려고 누워도 쉽게 잠에 들지 못 했다. 굉장히 주변에 신경질적이면서도,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이면 잠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학교가 곧 수면 장소였다. 공부는 전혀 하지않았고, 잠만 자기 바빴다. 남은 가족들은 나를 싫어했다. 외모가 아버지를 닮아서라나. 목도로도 맞아보고, 쇠파이프로도 맞아보고, 휘두르는 칼도 피해보고, 자고있는데 숨이 막혀 깨어보니 목을 조르고 있던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내 방문 앞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나도 잘한 건 없었다. 동생을 여러번 두들겨 팼다. 잘 기억이 나지도 않기도 한데, 그럼에도 감정 쓰레기통으로 분노 표출로 동생을 때렸던 것만은 기억에 있다. 자기 변명을 하자면, 동생이 내게 쇠파이프와 칼을 휘두른 적이 있다고 변명하기도 하지만... 나도 내심 안다. 나 또한 이 집에서 가정 폭력을 되물림했던 한 명의 가해자였을 뿐이다. 어머니가 누나에게 생활비를 주면, 그 돈으로 장을 봐오고 요리를 하더라도 내 몫은 없었다. 나는 누나와 동생이 먹고 남긴 음식을 알아서 줏어먹어야 했다. 가족들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싫어했다. 어느 겨울 날, 새벽 4시. 어머니가 누나를 불러놓고 짧게 한마디 했던 것을 아직 기억한다. 적당히만 해라. 그 이후로는 체념하고 살았던 것 같다. 2년간 기억이 없으니까. 그 때 했던 게임은 기억이 나는데, 그 외의 다른 일상이나 학교에서의 기억은 하나도 안 남아있다. 학교에서는 급식비가 밀렸다며 수업을 듣지 못 하게 했다. 교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면, 아이들이 지나가며 구경하곤 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누구와도 교류할 사람이 없으니 원래도 좋지 않았던 사회성은 더욱이 악화되었고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고, 또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 하고 벌벌 떨곤 했지.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애써 최대한 집에 들어가지 않으며 애들이 피하더라도 가능한 붙어있*** 했다. 싫어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도와주는 애들도 있었다. 이 때 잠깐이나마 사회성을 조금 회복했던 것 같다. 그러다 아버지가 학교에 전화를 돌렸었다. 어머니가 ***고, 내가 애들이랑 학교를 똥통이라며 욕을 했다나. 선생은 그걸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했고, 아이들은 진실 여부를 내게 물었었다. 나는 못 버티고 등교거부 끝에 자퇴를 했다. 알고보니 초, 중학교 때도 그리 했다더라. 자퇴한 후로는... 6년 동안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다. 집에서 구식 컴퓨터로 게임만 하다가, 돈이 필요해지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두세달 깔짝 하고 그 돈으로 다시 몇개월이고 히키코모리 생활. 그렇게 매일같이 게임을 하다보니 나중엔 실력이 좀 올라서 대리게임을 병행하며 용돈벌이를 했다. 그 돈으론 PC방에서 매일 12시갇씩 죽치고 있었고. 그러다 23살, 모종의 일로 티셔츠 2벌, 찢어진 츄리닝 2벌, 현금 2만원 달랑 들고 집을 나왔다. 온라인 게임 친구들과 나를 싫어하던 누나에게 빌어가며 45만원을 빌렸고, 그 돈으로 고시원에 들어갔다. 쌀과 김치, 라면이 무료라고 들었는데 두면 바로 사라져서 먹을 것이 오래 묵은 쌀밖에 없었다. 한참을 씻지 않은 듯한 밥솥을 애써 닦고, 묵어서 바스라지는 쌀을 씻어 밥을 해 먹었다. 한 4, 5일을 그렇게 맨밥과 물만 먹으며 일자리를 구하다 도저히 신물이 올라와 견딜 수가 없어서 고시원 주방에 있던 다른 사람의 간장을 한 숟갈 몰래 썼다. 갑자기 누가 어깨를 콱 잡기에 놀라 돌아보니 키가 190은 될 듯한 흑인 아저씨였다. 서투른 한국어로 따라오라고 하기에 걱정하며 따라가보니 컵반과 라면을 웃으며 주더라. 소란에 나온 다른 방 사람들도 죄다 외국인 들이었는데, 요 며칠 보니 계속 맨밥만 먹는거같아 걱정했다며 다들 뭔가를 하나씩 쥐여주고 갔다. 김, 밥, 반찬, 미숫가루.... 간장도 그냥 쓰라길래 죄송하다고만 했다. 중국인 아저씨는 자기 일하는 인력소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자신이 없어서, 일자리를 구했다 하고 감사하다고만 했다. 그렇게 고시원 생활이 시작됐다. 서너달 일하고 그만두고, 서너달 일하고 그만두고, 한달 일하고 그만두고, 두달 일하고 그만두고, 서너달 일하고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폐급이었다. 일은 더럽게 못 해서 사람들이 나와 일하는 것을 싫어했고, 사회성도 좋지 못 해 잘 어울리지도 못 했다. 견디다 못 해 나가거나, 눈치를 보다 나가기 일쑤였다. 이 즈음 내가 사회의 찌꺼기, 부산물, 일종의 잉여인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릴 때, 나는 절대 되지 않을거라 여겼던, 아니. 이런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는 지 조차 몰랐던 사회의 쓰레기가 나였다. 애써봤다. 잠을 자려고 노력해봤고, 일에 집중하려 해봤고, 열심히 일해봤다. 욕을 먹어도 못 들은 체 웃으며 죄송하다 말하고 일했다. 당시의 나로써는 안 됐다. 일을 하고 고시원에 돌아오면, 방이 좁아 양 어깨가 벽에 닿고, 천장이 낮아 불을 끄면 바로 코앞처럼 느껴지는 방이 내 인생의 관짝처럼 느껴지곤 했다. 바람이 새어들어오면, 수 년 전의 무너져가던 집에서 버티던 시절의 악몽을 꾸곤 했고 벽 너머로 다른 방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적당히 하라던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 많지도 않은데, 일을 하다 그만두길 반복하니 통장에 돈이 모이질 않았다. 3년이 지난 26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걸 할 수 없다.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다. 돈을 적게 벌어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주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는 일은 별거 없었다. 그냥 하루 종일 경광봉 들고 유도만 하면 될 뿐.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엔, 정신적으로 모자란 사람도, 몸이 아픈 사람도, 신용불량자도 많았다. 하여간, 정상적인 사람은 없었다. 그만두고 싶고,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곧잘 했다. 그리고 항상 마음을 다잡은건 지금 내가 저들과 같다는 생각이었다. 저들과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이 곳에서 1년 이상을 일해 내가 이 돈을 받아도 되는 정도의 사람임을 증명하잔 생각 뿐이었다. 중간에 일을 잘한다며 정규직으로 채용도 되고, 월급도 올랐다. 그렇게 1년 반을 일하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팀은 시설 관리직으로 분류가 되니까, 이걸 통해 처음 생각했던 경비를 해보려 했다. 그 전에는 경비 업무에 지원해도 키를 이유로 탈락했었지만 (실상은 면접 등 다른 이유였겠지만) 이제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경비 일을 시작한 지 5년차다. 이제는 10대에서 성장하지 못 했던 히키코모리가 30대가 되었다. 200도 채 되지 않는 월급으로 1년 넘게 일했던 모질이는 여전히 적지만 세전 300이 넘는 돈을 받는다. 돈을 모으기는 커녕 당장 고시원 비 낼 돈이 없어 인터넷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던 내가 이제는 통장에 천만원이 생겼다. 남들이야 그걸 돈이라고 모았느냐고 하겠지만은, 내겐 드디어 모은 소중한 돈이다. 도중에 고시원도 탈출해서 원룸도 구해서 산 지 4년 째고, 일을 하며 사회성도 많이 개선해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실 없는 농담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나 부족함을 느낀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고등학교 생활을 모른다. 1학년 때 자퇴했으니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군 생활을 모른다. 몸을 다쳐 면제를 받았으니까. 나는 친구들과의 우정과 연애 모두 모른다. 인간관계를 깊게도, 지속하지도 못 하는 문제를 너무 깊게 가졌었으니. 현재까지 연락하는 친구들도 몇 없고, 그나마도 다 인터넷에서 만나 현실로 이어진 인연이다. 나는 사회성을 개선한다고 나름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내 스스로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보다 어린 직장 동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따라했고, 직접 물어보고 공부하듯 배운 것도 여럿이었다. 아예 직접 물어본 적도 여러번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돌아온 답은 "저도 대화를 하고 싶은데, 너무 대화 주제가 통통 튀듯 바뀌어버린다." "나는 A를 말하고 있는데, XX님은 갑자기 B를 이야기하더라." 는 대답이었다. 이를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기도 해봤다. 내 혼자 고민할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 보다 더 많은 관점, 그리고 대외적으로 보이는 나에 대해 알기 좋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듯 말하려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길게 대화하고 싶지도 않고, 주제와 관련없다 여겨 흥미를 잃었을거다." 그런데 나는 지난 10년간 많이 노력하고 고쳐온게 이거다. 그런데도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관계가 깊게도,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이미 벌써 30대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더해야 정상적인 대화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나는 또 놀고, 쉬는 법을 모른다. 집에서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커뮤니티 보면서 싸우고 낄낄거리는거. 그게 내가 노는 법이었거든. 그 외에 기껏해봐야 대중교통 타고 멀리 모르는 지역에 가서 구경하다 맛있는거 먹고 한 숨 자고 오는 거 정도. 재미있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친구와 함께 보고 분석하며 토론하는 정도. 그러다보니 자전거도 탈 줄 모르고, 운전도 할 줄 모르고, 당구도, 볼링도, 여타 다른 유흥이나 술이나 차도 잘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놀고 쉬는지도 잘 몰라. 다른 사람들은 대화 주제가 참 많더라. 하는 것도 참 많대. 그걸 어떻게 다 아는지 신기할 정도야. 근데 나는 그것들을 전혀 모르고, 어떻게 배워야할 지도 감이 잘 안 오거든.... 친구한테 얘기해보니 놀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놀 줄을 모르는거지 하더라. 근데 정말 모르겠어...ㅋ 나는 이미 늙었는데. 사실 이미 한 사람의 몫을 할 줄 알아야만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는 결혼도 생각해야하는 나이일텐데. 내 정신은 아직도 10살, 15살 어린애 그대로인거지. 어쩌면 그보다 못 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보다 못 벌어. 그야 그렇겠지. 최저시급 받는 일인데 어떻게 많이 벌겠어? 몸이랑 시간으로 떼워서 돈을 채우는건데, 다른 사람들처럼 능력으로 버는거에 비하면 못 버는게 당연하지. 그거야 우울하긴 해도 납득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나는 돈도 못 모았어. 이제 겨우 천만원 남짓 모았고, 한달에 40만원 겨우 모으고 있는데 주변을 보니 다들 5천, 8천 모았더라. 낭비벽도 있고, 돈을 관리하는 법도 모르는 놈이 돈도 못 버니 문제지. 이렇게 모아서 아파트는 커녕 투룸 생활이라도 가능한 순간이 올까? 아무리 계산해봐도 수천, 수억원을 제대로 모을 수가 없는데. 하는 절망감도 들고. 변명이지만,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럴까 싶기도 해. 수염 깎는 법이니 뭐니 하는 것도 20대 되어서야 배웠거든. 고등학생 때는 수염이 나면 쉐이빙 폼은 커녕 비누칠도 안 하고 일회용 면도기로 2-3일에 한번씩 밀었었다. 아무튼... 정말 긴 시간 동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사회성이 부족하고, 돈도 없고, 잘 벌지도 못 하며, 게임과 온라인 커뮤니티 중독에 빠져있는 모자란 놈이었어. 또, 요즘 들어 정말 외로운데 나이들어서는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친해지려 해도 일종의 비즈니스적 관계라고 해야하나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 친구처럼 허물없는 관계는 되지 못 한다는 느낌을 받아.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느낌이야. 연애도... 마음같아선 정말 외로워서 하고싶은데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친구도 제대로 만들지 못 하는 놈이 이성 관계를...애초에 접점도 못 만들겠더라. 객관적으로 볼 때도 매력은 커녕 비호감이고. 포기해야지 하면서도 외롭긴 하다. 사랑도 받아본 적 있는 사람이 줄 수 있는거더라. 정상적인 성장을 겪지 못 한 나는 그런게 불가능한 것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아. 그게 우울해. 결국 나는 장기적으로 나라는 인간이 사회에서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분명히 지난 10년간 나는 내 자신을 개선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과거로부터 비롯된 상처와 무지는 여전히 내 발목을 붙잡고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하지도, 유지하지도 못 하게 만든다. 늘 외롭다. 항상 매 순간 내가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단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설령 언젠가 고칠 수 있다 한들, 이미 30대가 되었는데 35살, 40살이 되어서야 겨우 남들 스무살 정도의 사회성을 갖춘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이미 늦었단거지.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하지 않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쥔 채로 늙어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 하고 자살하는 미래가 아른거려. 이래서는 안 되는거잖아. 일종의...뿌리부터 썩어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일이 썩으면 떨어지고, 잎이나 가지가 썩어도 식물은 죽지않지만 뿌리가 썩으면 어떻게 애를 써도 방법이 없잖아. 근본적 문제가 어쩌면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고 불안감과 좌절감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고개를 들더라.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모르겠다.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든다. 살기 싫다. 이렇게 살기 싫었다. 살면서 아무리 객관화를 해보려 하고, 자신의 단점을 고치면서 살아보려 해도 어느 순간 마주하는 자신의 한계 같은게 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못 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과거를 보게 된다. 이겨내라, 마인드셋을 고쳐라. 고통은 네 마음 속에 있는 것이지, 이미 지나간 과거에 있지 않다. 그런 말은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살면서 내 자신을 고치려는 방향으로 살아 왔는데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들었을 때 쉽사리 수긍 되지가 않는다. 어려운 일이다. 몇 년에 한번씩 이런 얘기 들을 때, 내 인생의 과제처럼 느껴지는 것 같고.... 지금까지 살면서 겪는 어려움 그 모든게 마주하는 내 한계여서 고통스럽고 죽고싶단 생각만 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한계를 마주하면 그냥 당장은 버티고 단점을 확인하고 고치자... 그렇게 생각하고 땜빵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괴로웠고...근본적으로 고장났으니까 땜빵해봐야 다른데서 자꾸 또 문제가 터져나오는구나 했지. 그냥 평생을...땜빵만 하다가, 한 번도 제대로 믿고 의지하고, 어울릴 사람들을 만나지도, 이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이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괴로웠고 늘 죽고 싶었지. 미래가 늘 어둡다. 그려지질 않는다. 기존에 5년 가까이 하던 경비직을 이번에 때려쳤다. 도저히 이 일을 내가 앞으로 남은 수십년간 한다는 것이 그려지질 않아서. 문턱 하나 없는 직종에서 같잖은 이유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 나는 저러고 싶지 않아서. 이사도 했다.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배워보고, 돈도 아낄 겸 아는 동생을 데려와 월세를 반반 부담하고 같이 살기로 했다. 방이 좁아, 회사를 관둔 김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비록 낡았지만, 원룸이 아닌, 구조가 제대로 된 투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좋았다. 그런데, 비록 경비 일이지만 일을 할 때에는 막연한 걱정이었던 것이 백수가 되니 좀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공시도, 자격증 공부도 할까 했지만 구체화 되질 않는다. 내가 경비 외의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일과 병행해 공부를 하기는 할까? 내가 장기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아둔 돈은 빠르게 녹아 내리는데, 나는 늘상 그랬듯, 한심하게 멈춰 서 있다. 추하게, 살만 한껏 찐 채로.... 건강도 좋지 못 하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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