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에 책임감없는 아빠 이상한 주사가 있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결핍|이혼|중학교]마인드카페 네이버블로그 링크마인드카페 페이스북 링크마인드카페 유튜브 링크마인드카페 인스타그램 링크마인드카페 앱스토어마인드카페 플레이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앱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플레이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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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azxc
·9년 전
신용불량자에 책임감없는 아빠 이상한 주사가 있는 엄마... 20살 언니와 18살 언니.. 난 어렸을때 엄마를 싫어했다. 계모라고 생각했다. 맞벌이어서 집에 항상 늦게 왔다. 난장판이 되어있는 집을 보고 엄마는 항상 나와 언니들을 때렸다. 항상 맞았다. 아빠는 저 멀리 계신다. 내가 사는 곳 과 다른 타지역에.. 가끔씩 집에 들어왔다. 아빠가 집에 오면 엄마는 항상 아빠를 때렸다. 어린 나로서는 모를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쉬는 날이면 항상 나가서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들어와서 더러워진 집을 보고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저 때리기만 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정을 몰랐다. 아니 모른다고 해야할까? 언니들과 나. 모두 애정결핍이 있다. 어린 나는 마음의 병이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죽었으면 좋겠다거나 돈을 모아서 이 집을 나가버리겠다는 것. 언제는 언니가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었다. 언제나 날 때리는 언니가 너무 밉고 그런 언니를 편들어 주는 엄마도 미웠다. 유치원 선생님마저 날 믿어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다른 아이의 죄를 나에게 덮어 씌우고 나에게 벌을 주셨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 하지만 아빠만은 날 사랑해줄거야..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아팠고 한편으로는 익숙해져가는 느낌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렇게 아픈 초등학교 추억이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갔다. 엄마는 내가 어느정도 컸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아빠에 대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아빠는 도박쟁이었다. 심지어 법정에서 우리를 고아원에 버리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라며 호통을 쳤다고 했고 사업을 했었는데 망하고 빚이 생겼는데 그걸 외삼촌과 엄마에게 떠넘겼다는 사실. 그 외에도 많았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우리 아빠가 그럴리 없어..엄마가 거짓말을 하는거겠지.라고 현실도피를 혼자 마음 속으로 했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다. 그게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거짓말을 친다고 믿었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이다. 일주일에 5일 이상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오줌을 쌌다 이불에. 그래서 우리집에선 오줌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엄마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았던 것을 알까 모를까. 아마 알지 않을까?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자신의 주사를 말했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엄마는 그것을 말하고 마음이 편해진걸까 더 많이 마시고 더 많이 쌌다. 무섭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오줌이 ***어있는 나를 발견하는게 무섭다. 우리집은 매우 가난하다. 아빠가 있을 때도 좋지 않았지만 이혼 후 사정은 더 나빠졌다. 언니들과 나, 엄마 총 4명이 사는데 집은 14평이다. 이제는 할머니까지 들어오셔서 5명이 14평짜리 방바닥에서 다같이 잔다. 그래서 숨이 막힌다. 내 방도 없고...공부하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다같이 잘 수 밖에 없는데 엄마는 주사가 ...그렇다 보니 우리는 최대한 벽에 붙어서 엄마와 떨어져서 잤다. 그것까지는 익숙하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비교를 한다. 내 친구들은 다 학원도 다니고, 용돈도 받고, 집에 먹을 것들도 있고, 자기 방도 있는데 난 그 중 하나도 가진게 없다. 이게 가장 힘들다. 친구들을 우리집에 데려오는게 싫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에게 거짓말로 엄마가 집에 친구 데려오는 것을 싫어하신다고 했다. 비참한 나. 이 힘든 환경에서 그래도 난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 평균 95를 맞고는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나는 중학교에 올라와 공부는 커녕 수업도 듣지 않았다. 성적은 떨어지고 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가 중2 마지막 시험 때 평균 90점을 넘었다. 주위 친구들이 모두 공부를 하기에 나도 하게 되지 않았나..싶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와 나는 모두 90대를 유지했다. 심지어 3번째 시험에는 약 98점을 맞았다. 우리 가정과 가난한 환경만을 욕하던 '나'는 이제 이 어려움 속애서 벗어나기 위해, 극복하기 위해, 다같아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나'가 되었다. 생각없이 불만만 가지고 살던 '나'가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가 되었다. 나는 이 앞의 말을 고쳐보려 한다. 신용불량자에 책임감없지만 날 사랑해줬던 아빠 이상한 주사가 있지만 힘들어도 날 키워준 엄마 나의 하나밖에 없는 두 언니 내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다. 쓰고 싶은 양의 절반도 못썼는데 이렇게나 길다니.. 나도 참 많은 고난을 겪고 버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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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90
· 9년 전
마음이 아파요.. 어린나이에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어요. 해줄 수 있는 말이 힘내라는 말 밖에 없네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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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xc (글쓴이)
· 9년 전
지루하고 귀찮으셨을텐데 이렇게 긴글을 읽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