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다 그냥 언젠가부터 지루했다. 슬퍼해 본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불안|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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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지루하다 그냥 언젠가부터 지루했다. 슬퍼해 본 적도 없고 딱히 기뻐해 본 적도 없고 밀려오는 짜증에 화를 내고 나면 더 크게 밀려오는 지루함이 날 덮쳤다. 몇 년 살지도 않았는데 벌써 질려버린 건지. 책 속 주인공의 모험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그 주인공인 것 같아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자극적인 책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는 너무 내 삶 같아서 재미가 없어서. 어느샌가 내 손엔 핏빛 소설이 들려 있더라. 주인공이 누군가를 계속 죽였다. 더 보고 싶었다. 혼이 났다. 이상한 책 읽는다고. 점점 더 점점 더 뒤틀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아졌다. 자극적인 그림이 좋아졌다. 웹툰을 찾았다. 공포 웹툰이었다.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음 컷을 기다리며 가벼이 뛰는 가슴이 무언가 느껴졌다. 곧 지루해졌다. 빨간 웹툰이었다. 칼이 나왔고 피가 튀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웹툰이 날 자극해 주었다. 좋았다. 한참 웹툰을 보니까 더 이상 흥분되지 않았다. 다른 웹툰을 봤다.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였다. 살인을 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주인공은 분명 흥분한 것 같았다. 웃지 않던 주인공이 웃고 있었다. 나도 그애처럼 웃고 싶었다. 비록 그게 비뚤어진 웃음이라도. 다들 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나한테는 너희가 이상해 보이는데. 유치원 때, 다같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이상해 보였다 왜 힘들게 뛰는지. 애들은 재미있다고 했다. 같이 뛰어 보았다. 하나도 재미없었다. 어떤 애가 싫다고 하면서 울 때까지 쫓아가 봤다. 이번엔 재미있었다. 그게 그 애랑 같이 노는 건 줄 알았다. 집에서 혼났다. 친구 괴롭힌다고. 학교에 들어갔고 닥치는 대로 시험을 보고 대회도 나갔다. 매일매일이 다급했다. 그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더 많이 대회에 나갔다. 하루에 2개씩 작품을 완성하면서 글 3개를 동시에 쓰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지루할 틈이 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대회가 매일 있지는 않았다. 대회가 끝나니까 지루했다. 한참 바쁘고 나서 찾아오는 지루함은 더 컸다. 정신이 피폐해졌고 허전한 마음에 끊임없이 먹었다. 단 음식을 많이 먹었다. 살이 쪘다. 거울을 보니 절망스러웠다. 키는 안 컸다. 죽은 듯이 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웹툰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단점이 있었다. 완벽히 뒤틀린 캐릭터들은 회개해서 착해지거나 비참하게 죽었다. 그래서 내가 단점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 글을 썼다. 주인공은 완벽한 악 그 자체였다. 글은 생각보다 잘 써졌다. 특히 자세한 묘사가 재미있었다. 그 묘사 안에 복선을 숨기는 것도. 하지만 종이에서 고개를 들면 나는 완벽한 살인마 주인공이 아니라 책상에 파묻힌 세상의 티끌이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한때 자각몽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았다. 자각몽을 꾸게 되면 책 속의 초능력자가 되고 싶었다. 괴도 아르센 뤼팽이 되고 싶었다. 뤼팽은 매일이 흥미진진했으니까. 그리고 거기서 안 나오고 싶었다. 지금까지 이런 말들을 거의 안 했다. 여기선 날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해도 될 것 같다. 욕해도 상관없어, 나도 내가 이상한 거 아니까. 이상하다는 말, 수백 번도 넘게 들었으니까 이젠 기분 나쁘지 않아. 언젠가 사람들에게 삶이 너무 지루하다고 했더니 원래 네 나이 땐 혈기왕성해서 다 그런 거다, 평화롭고 좋은 거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난 차라리 내 삶이 위험했으면 좋겠어. 사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됐을 때 좋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분위기가 좋았다. 평화로운 것보다 나았다. 훨씬. 누군가는 나에게 사춘기라 그렇다고 했다. 그럼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사춘기였나. 그때부터 지루해지기 시작했는데. 우리 가족 중 누군가 죽으면 나는 슬퍼할까. 그럼 뭐라도 느껴질까. 내가 얼마나 지루한지만 썼는데 너무 길다. 사는 게 이렇게 지루한 건지 몰랐다. 도와주세요. 죽을 마음은 없다. 끝까지 살아 보고 싶어서. 그런데 가끔 죽일 마음은 생긴다.
느껴지지않아흥분하고싶어지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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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ak0930
· 3년 전
나도 사는 게 지루하긴한데 삶의 다양한 자극을 찾아보는 게 어때. 쾌락의 종류는 다양하니까. 살생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추천하긴 힘들겠다. 미스터리 스릴러나 공포물 좋아하는 거 같은데 소설을 지금처럼 써도 괜찮을 거 같아. 모르지 나중에 그게 영화가 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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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글쓴이)
· 3년 전
@sonak0930 욕하지 않고 좋은 조언 해 줘서 고마워. 안 그래도 작가가 여러 꿈 중 하나야.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니 죽이는 것만큼 원초적인 쾌락을 느끼진 못하겠지만 리스크 없이 즐거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겠다. 마지막 문장 마음에 들어. 나중에 내가 쓴 글이 영화화된다고 생각하니 기분 좋네. 이렇게 시원하고 기분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프라인에서도 정말 착한 사람이겠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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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ak0930
· 3년 전
조금 비뚤어진 철학이라고 하잖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특이한데. 나도 그래. 나는 여기서 좋은 사람들을 찾고 있어. 너의 글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썼거든 고마워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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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글쓴이)
· 3년 전
@sonak0930 친구라는 말 오랜만이다.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 그런데 너는 우리가 특이한 것뿐이라고 말하는구나. 그런 면에서 네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져. 앞으로도 여기서 자주 보자. 조금 이르지만 잘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