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조금 더 얘기하고 싶어서요.' 그 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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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사실 조금 더 얘기하고 싶어서요.' 그 밤. 다음 약속이 있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같은 방향이었지만 굳이 따로 간다고 얘기했다. 그저 혼자 귀가하면서 우리가 오늘 나눴던 대화를 곱씹을 생각이었다. 그걸 원했다. 그때 담백한 표정으로 그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이었다. '조금 더 얘기하고 싶어서요.' 진심일수도 어쩌면 예의상 한 말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마디로 나는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 밤이 지나면 우린 공적으로 볼 일이 없었다. 나는 내심 그 밤이 우리가 보는 마지막일거라 예상했다. (오늘이 마지막.) 우리는 세 번의 커피를 마셨다. 두 번째 요청때 그는 '가기전에 커피 한잔 더 해야 할텐데 ..' 라며 운을 뗐고 나는 응했다. 그날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세 번째인 그 밤에 그는 모델 친구와의 약속을 뒤로하고 나와 커피를 마셨다. 나는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해서 나와의 약속을 이직하기 전에 해치워버리고 싶은건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스쳤다. 정작 맞은편에 앉은 그의 얼굴은 해맑게 청량해서 이런 생각이 든 내가 죄스럽기까지 했다.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그는 여름바다 같았다. 시원한 웃음과 청량한 말투. 파도를 연상시키는 굽슬거리는 머리. 푸른색과 흰색의 셔츠가 잘 어울리는.. 지중해의 해변이 떠오르는, 그런 사람. 오래된 숲 안에 비밀스런 고성이 있는 나와는 다른 그런 사람. 주로 난 듣는 쪽이었지만 그와 대화하는게 좋았다. 뭐가 그리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수다스럽지 않은 성격인걸 아는데 그는 이런 저런 말을 열심히 풀어놨다. 대화하다 보면 나까지 건강하고 긍정적인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청량한 파도처럼 긍정적인 기운이 물 밀듯 내 안에 번져가서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헤어질 시간이 됐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이겠다는 일종의 단념을 했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 사람이 스쳐갔다, 감상을 되짚으며 이대로 헤어져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가 그 한마디로 나를 회유하지 않았다면. '사실,.. 좀 더 얘기하고 싶어서요.'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 있을까? 모르길 바란다. 그의 그 한마디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더 얘기하고 싶어해줘서 고마워요.' 우린 16분간의 이동시간에 쫒기듯 대화를 나눴다. 눈치없이 대화에 끼어든 택시기사님에게 잠시 장단을 맞춰주고 있을때 그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에 변화는 전혀 없었지만 그의 눈이 몹시 언짢은 시선이었다. 나는 얼른 기사님과의 대화를 끝내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대화를 이어갔다. 평소엔 친절하고 예의 바른데 꽤 소유욕이 있는 녀석이라고 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이성을 사귈때에 3시간 안에 결정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이 내가 아니라 오히려 다행인 기분이 든 것은 착각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몇 번 마주침으로 알아 버렸다. 그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가를, 한없이 냉정해 질수 있는 남자인가를. 나에겐 지중해의 해변 같지만 다른 이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짧은 시간 동안 유익한 대화를 나눴고 내가 택시에서 내리기 전, 그가 말했다. '오늘 대화 즐거웠어요.' 그의 말에 나는 마지막인 것처럼 악수를 건넸다. 그는 잠시 당황하다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의 시원하고 섬세한 손바닥이 맞닿았다. 나는 지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즐거웠어요.' 내가 택시에서 내려 문을 닫기 전에 그가 말했다. '평일에 연락할께요!' 나는 '그래요.' 라고 대답했다.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나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휴일도 주말도 아닌 평일에 연락한다는 그의 말이 귀엽지만 이해가 안돼서 우스웠다. 이따금 생각날 것 같다. 나의 33살 어느 초여름에 만난 26살의 지중해의 해변을 닮은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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