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죽고싶었던건 아마 7살때쯤이었을것이다. 그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불안|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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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piurorong7
·4년 전
처음 죽고싶었던건 아마 7살때쯤이었을것이다. 그뒤로 간간히 거의1년에 한번꼴로 죽고싶어했었다. 나이먹을수록 지어야하는 짐이 많아진다는걸 이미 유치원생때 알아차렸던것이다. 집이 뭐 나쁜집안인건 아니다. 그냥 평범한편이라고 본다. 부자도 아니고 가난한것도 아니고 그냥 사업도안해서 안정적인 집. 난 엄마아빠도 좋아했었다. 동생도 좋아했다. 첫째니까 언니니까. 그말도 좋아했고 언니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었다. 학교도 재수했지만, 서울권은 아니었지만 괜찮은 4년제로 왔다고 생각한다. 고3때보다 상향지원도 했었고. 통학도 기숙사생활도 다 힘들었긴하지만. 학교 수업이 불만족스럽던적은 없던거같다. 2학년1학기까진 버틸만하다고 생각했었다. 2학기부터 난이도 급상향되더니 안풀리기 시작했고 어려울뿐더러 다른애들은 다 잘해오는거로 보였다. 자존감떨어지고 열등감이 살아나려들길래 재수생때의 성공공식을 다시 생각해냈다. 못해보이는사람, 내꺼, 잘해보이는사람꺼 비교해서 한쪽으론 안심하고 한쪽으론 배우고. 하지만 처참했다. 난생처음 d받고 충격먹어서 휴학했었다. 그게 2016년도. 우울해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2달간 게임만했다. 내가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데 안하게되면 어떨까? 싶었다. 재수생때 오프라인 행사갔던 기억이 행복함으로 남아 있어서 그날그때껏 버텼던거라서 가고싶던 맵에 도착한것으로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다른건 전혀 하지않으니 부모의 목소리가 커졌다. 마침내 즐길수있겠구나 하던것이 그 소리침에 묻혔다. 3월, 게임을 난생처음 그만두고 폰으로 트위터만 보다가 핸드폰은 집어던져버렸다. 그리고 며칠동안 울었다. 글고 침대에 앉아 지금이라도 나가 자살할까? 고민했는데 순간적으로 진짜 나가 죽고싶어져서 살아야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아직 초등학생때 꿈을 못이뤘다. 만화가 그리고싶었다. 그렇게 잡았다. 그리고 5월, 가장 오랜친구와 유럽으로 한달간 여행다녀왔다. 내돈으로 간게 아니라서 내내 돈아껴야돼라는 생각으로 다녔다. 부모돈 많이 쓰기가싫었었다. 그냥 더 맘대로 지르고올걸그랬다. 다녀오고선 정말 행복해졌다. 가서 환상충족도하고왔고 다녀오고나니 브렉시트사건이 일어나더라. 살만해져서 요가도하고 에어로빅도했다. 답답한게 쫙쫙풀리고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것도 좋긴했다. 11월쯤, 트위터 트친과의 영좋지못한 끝맺음으로 인해 모든 자신감을 잃었고 다시 자존감도 잃었고 이번엔 회복불가 상태가 되었다. 애초에 가상관계에 집착한건 집에서의 내 취급이 별로였기때문. 나는 불안했었다. 20대가 취업이 안된다는 말들 때문에. 그런데 친구들은 잘만 취업하더라. 그걸보고 안심됐었다. 하지만 번아웃...아무튼 그후론,24살생일때부터는 내 생일이 더이상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째 언제나 똑같은 공허함과 살고있다. 그런데 역시나 시간지나니 니 친구들은 저런데 너는뭐니를 시전하더라. 내 상처가생길게 빤해서 신경끄고 무시하는법을 익혔다. 내 생각의 흐름은 아주 과할정도로, 상식선을 벗어나게 되었다. 어디가서 일벌일까봐 나가기 싫어졌다. 차라리 불편해도 과거의 내가 더 좋다. 옛날엔 마냥 사회인들이 무서웠다면 지금은 나도무섭다. 코로나 후로 수업을 화상회의로 하니 바깥에 가지않아도 되서 좋았다. 하지만 졸업전시작품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하고싶지않다. 가고싶은 회사도없고. 있었지만 없어졓다고해야할까 포기했다해야할까. 내가1학년때 바랬던 완벽한 이상향은 일단 이룰 수 없는게 확실해졌다 여러모로. 기분따라 급격히 왔다갔다하는것도 그렇지만 우려하던 것들이 그 11월후로 다 터졌다.내 성격적특성중 여지껏 열심히 가리던 최악의 부분만 남았고, 과거의 나라면 용서치못할짓을 골라 하고있다.
짜증나혼란스러워화나두통분노조절조울불안해자고싶다무서워부끄러워공허해무기력해슬퍼괴로워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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