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의 삶의 이유를 못 찾겠습니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불안|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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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삶의 이유를 못 찾겠습니다
커피콩_레벨_아이콘uzani
·4년 전
저는 해외에서 2년 6개월째 살고 있는 고3입니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 혼자라도 남아있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완고한 입장에 묵묵히 따라왔습니다.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적어도 사람 사는 데라고 믿었습니다. 학창시절 동안 1, 2 년 마다 학교가 바뀔만큼 전학을 무척 많이 다녔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잘 적응하고 어울렸기에 이번에도 그럴거라며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여기서는 살아가는게 너무 싫습니다.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습니다. 학우들과 친해서 반장이나 학생회도 해왔고 성적도 상위권입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학교에서야 같이 놀고 매점도 가지만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제가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해서겠죠. 이곳에서 10년 넘게 함께 지내온 이미 형성된 무리 사이에 끼기도 힘들었고,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가 무척 소모적이고 지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아무래도 후진국이다 보니 시민의식이나 사회적 제도와 같은 것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미개하다는 생각까지 들곤 합니다. 한국에 살 때에는 당연하게 통하던 상식들이 이곳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일처리는 답답하고 외국인 바가지와 같은 문제도 여러차례 겪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더 그리워집니다. 잘 갖춰진 법제도에서 보호받고, 편리한 대중교통과 빠른 일처리를 누릴 수 있는 내 나라가 그립습니다. 여기서 살며 얻은 최고의 수확은 애국심일까요. 저는 이곳에 오며 진로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대학 진학보다 취업에 관심이 있던 저는 실업계와 비슷한 개념인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게 되며 저는 그 길을 포기해야 했고, 일반 고등학교와 같은 지금의 학교에서 대학을 위해 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지금을 비교하면서 삶의 질이 너무도 낮아졌음을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곁에 평생 함께할 친구들과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사람을 만나는게 재미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멀리 오래 떠나있는 저를 기억해주고 연락하며 지내는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그들과는 무엇을 해도 재밌었습니다. 아침에 동네 교회 앞에 자전거를 끌고 모여 함께 등교하곤 했는데, 하루에 한두 명은 꼭 늦어서 미친듯이 달렸습니다. 학교나 학원이 끝나고 몰래 갔던 피씨방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주말이면 가끔씩 번화가에서 한나절을 놀았습니다.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반 친구들을 모아 놀이공원에 가곤 했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한강까지 가서 라면을 먹고, 밤에 호숫가까지 갔던 기억은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편의점에서 끼니를 떼우기 위해 먹던 라면과 삼각김밥은 무척 맛있었습니다. 여름날 에어컨을 안 틀어주면 나무그늘 아래에서 시덥잖은 수다를 떨던게 즐거웠습니다. 태풍이 와도 비를 맞으며 하던 축구가 좋았습니다. 새벽마다 친구와 수영을 하고 뿌듯해 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는 그런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지금이 힘든 건 그때가 너무 완벽해서였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애초에 진심을 나눌 친구도 없고,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놀이공원과 번화가를 가보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계속 살아왔다면, 행복을 모르고 살아왔더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텐데요. 세상이 좁아진 기분입니다. 바다에서 살다 어항에 갇힌, 자유롭게 살다 묶여버린. 저는 이제 예전처럼 멀리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일상을 매일 똑같이 단 하루도 다르지 않게 집과 학교와 학원을 번갈아 전전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최근들어 향수병이 심해진건지 심리적으로 무척 불안한 것 같습니다. 아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사람 많은 길에서 미끄러지거나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가벼이 말하던 자살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스스로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남겨질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하니 제가 무슨 자격으로 제 삶을 선택하겠나 싶어 그만두었습니다. 차라리 고아였다면, 사귄 친구가 없었다면 쉬웠을까요. 한숨 자고 일어나니 제 자신이 너무도 소름끼쳤습니다. 갈 때까지 갔구나. 많이 망가져버렸구나. 나조차도 나를 포기한다면 내 인생의 이유는 어디있을까. 같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제 상태를 보아 하루 빨리 한국에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대학 진학이 걸려있는 고3이다 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도 이제와서 수능을 준비할 수도 없음을 알고, 해외 입시 전형에 맞추어 2년이 조금 넘게 쌓아온 것을 버리기도 아깝습니다. 이렇게 겨우 버티고 있는데, 얻어갈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너무 슬플 거 같습니다. 심리 치료라도 받고 싶지만 외국이라 그마저도 쉽지 않네요.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입니다. 두서 없이 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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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yc
· 4년 전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아버지 직업 특성으로 인해 2년에 한번씩 나라를 옮기고 있는 중학생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굉장히 공감이 갔습니다... 저의 경우 어렸을때는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더 나이가 들고 얼마전에 한국에서 해외로 옮기게 되며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도 많으시고 제가 조언을 드리긴 어렵지만 무엇 하나라도 도움이 되길 바래서 적어봅니다... 친구들과 보이지 않는 벽이 보이신다는거는... 사실 저도 항상 경험해 왔습니다... 태어나서 살아온 환경이 달라선지 뭔가 한국의 친구들처럼 친근해지기가 어렵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친구들과 학교 밖에서 가끔 만나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요...? 제 경우에는 밖에서 만날수록 더 빨리 가까워지는 거 같더군요... 물론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한번 같이 쇼핑을 가자고 권유해본다거나... 그러면 어떨까 합니다 해외에서 지내면서 일상이 묶이고 즐겁지 않다는게 정말 너무 공감이 되는데... 저는 답답할때는 한국 친구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손편지가 아니더라도 그냥 디지털 이어도 괜찮으니 가끔 장문의 내용으로 편지처럼 보냅니다. 편지를 보내는 취미도 한번 고려해보시면 어떨까요...? 심리적으로 불안하신것은 제가 정말 무슨 말씀을 드릴지 모르겠네요... 향수병과 고3이 되면서 대학이나 이런 진학으로 더 불안해지신거 같네요... 저도 비록 아직 어리지만 해외에서 진학에 대한 고민이 더 심해지면서 불안해지군요... 지금 상황이 어떠신진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한국에 잠깐 여행을 가거나 가끔씩 하루정도 아무것도 안하면 어떨까요... 물론 고3이시기에 힘드시겠지만... 뭐라도 좋아하는걸 찾아보면 어떨까요... 저같은 경우는 그냥 버티다가 우울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정말 무슨 말씀을 드려야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공감되서 말이 길어진거 같아 사과드립니다. 도움이 되지 못한거 같아 너무 죄송하고 내일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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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zani (글쓴이)
· 4년 전
@wdyc 고마워요. 이런 고민을 저만 느끼는 건 아닌가 줄곧 걱정했었는데 무엇보다 공감해주시는 분이 계신다는게 큰 힘이 되네요. 한동안은 어렵겠지만 입시가 끝나면 학교 밖에서 만나는 약속도 늘려볼게요. 저도 이따금씩 한국 친구들과 장문으로 편지처럼 연락하곤 하는데 심리적인 안정이 많이 되더라구요. 이번 여름 방학에 대학 때문에 한국 들어가는데 겸사겸사 친구들도 만나고 오려고요. 다들 바쁠 시기라 제대로 만나려면 졸업 하고 내년은 돼야겠지만 당장은 잠깐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되네요. 며칠 푹 쉬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해볼게요. 타지에서 힘들지만 잘 이겨내봐요.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