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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글
꿈/소원
비공개
3달 전
나는 2002년 3월 23일에 태어난 남자다. 내가 유치원을 다니기 전 기억은 조각으로 남아있다. 그 조각중 가장 크고 날카로운 조각은, 내가 너무 어릴때 단팥빵을 먹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졸랐는데 그때 집에서 쫓겨났다는 기억이다. 아무튼 우리집은 그정도로 정말 가난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한 친구가있다. 한번은 내가 그 친구 생일 파티에 갔는데 거기서 처음 피자와 치킨을 먹어봤다. 생일 선물은 유희왕 카드를 줬다. 그리고 내 생일때 어머니한테 피자와 치킨을 준비 해달라고 했다. 물론 그건 너무 과분해서 어머니는 대신 부침개와 떡을 준비했다. 흰 백설기를 준비했다. 내가 유희왕 카드를 준 친구는 내 생일 이후 나를 피했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나는 거지라고 놀림받았다. 유치한 따돌림이지만 솔직히 힘들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라서 바쁘셨고 내 누나는 나를 싫어했다. 나를 베란다에 가두거나 식초를 뿌리거나 식칼로 위협하거나 했다. 그런 날들을 억지로 견디니 중학생이 되었다. 거기서도 별로 다른건 없었다. 누나는 날 괴롭히고 부모님은 바쁘시다. 그때 처음 별명이 생겼는데 기생수라는 별명이었다. 그냥 만화 기생수처럼 흉하게 생겼다고해서 그렇게 부르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기초생활수급자의 줄임말이었다. 중학교 1학년, 그때 처음으로 투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행히 중학교 1학년 2학기쯤 친구가 생겼다. 매일 그 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슬픈건 내 친구가 2학년이 되자마자 죽었다는 것이다. 폐에 물이 찼다고 했었나 그랬는데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그렇게 잃었다. 계속 울었다. 하지만 내 슬픔과 무관하게 내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직장을 바꾸고 조금 숨통이 틔이자마자 누나는 독일로 유학을 보내겠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조금 삶이 나아지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나를 몰아붙이셨고 나는 가끔 과호흡, 안면근육에 심한 떨림, 공황장애를 겪었다. 어머니를 탓하고 싶지않다. 많이 힘드신 분이니까 술을 드시고 나에게 심한말을 하셔도 다음날 사과하셨다. 중학교때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서 전학을 보내달라했고 우리집은 나를 다른학교로 전학 시켜줬다. 전교생수가 40남짓하는 작은학교였고 굳이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지않았다. 오히려 선생님들과 가까이 지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쯤이 되었을 때 누나가 돌아왔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누나는 나보다 작은 여자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무서워 했지만... 그래서 그때 상담을 다녔다. 부모님께 내가 누나한테 당한 일을 다 말하고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나에게 사과했다. 상담은 정말 쓰레기 같았다. 내 이야기를 들을려는 사람은 없고 다 나를 가르치려는 사람들 뿐이다. 나와 한 약속도 어기고 자기들 좋을대로 나를 몰아갔다. 누나와 나는 다시는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다른지역에 있는 특성화고로 진학할려했다. 부모님을 며칠간 설득하고 나는 결국 그 학교로 갔다. 그 학교는 제법 좋았다. 비록 돈이 부족해 주말에 자주 굶었지만 학생들도 괜찮았고 배우는 과목도 재밌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연애도 했는데 그덕에 성적이 계속 떨어졌다. 어머니는 그게 마음에 안드신거 같다. 계속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압박을 하셨다. 그러다가 연애중 여자친구가 나 말고 다른남자를 만났다. 그때도 투신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고향에 있는 학교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내가 여기서 잘 할거라 생각하신다. 하지만 난 지쳤다. 계속 성적은 떨어지고 마음의 병은 악화되었다. 정신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같이 고민해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병을 진단받고 약도 받았다. 하지만 난 아직 아프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다시 사랑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아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삶의 가치를 모르겠다. 고민이다.
강박우울어지러움불면괴로워트라우마망상분노조절호흡곤란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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