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살아온 인생 일부 기억나는대로 쓸게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폭력|진로|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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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살아온 인생 일부 기억나는대로 쓸게요.
커피콩_레벨_아이콘kyoukoso36
·4년 전
답변 안하고 좋아요 버튼만 누르고 조롱할 생각 관두시길 바랍니다. 저는 날때부터 안면장애4 급 입니다. 왼쪽 귀가 안들려서 왼쪽 귀만 하다 잘안끼다. 더악화되어 오른쪽 귀도 하게되었습니다. 저는 무표정일때는 정상으로 보이지만 웃을때나 울때나 누가부를때 반응하면 눈썹 한쪽만 올라고고 웃을때 입술은 오른쪽으로 몰립니다. 이로인해 친구들도 만들수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저랑 친구하면 창피한 존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유치원때도 적응못해 몇번 유치원을 바꿨습니다. 초등학교때는 제사물함의 책들을 친구들이 훔쳐가거나 제 뒷주머니의 지갑을 몰래 빼내서 훔치기도 했습니다. 가정에선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전어머니를 아버지의 폭력에서 지키기위해 몸던져 제가 대신 맞고했습니다. 중학교때는 모르는 후배가 제 뒷통수에 침을 뱉는 행동까지 했습니다. 가족들과 관계는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기를 많이 하시고 그 화풀이를 저에게 하셨습니다. 공부 안한다는 핑계로 넘어뜨리고 발로 복부를 수차례 차든가 하며 그것도 어머니 모르실때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저는 두려움에 떨며 자라야 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이때도 제사물함의 책들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좌물쇠를 잠궈도 따고 훔쳤습니다. 또 기억나는건 시험날 제자리가 교탁 앞인데 친구들이 가방을 앞에 놔두라면서 던져두는데 갑자기 다른 녀석이 가방을 뒤져보며 카세트 부서진걸 제게보이며 물어내라고 하더군요. 전 당황하고 결국은 돈으로 물려냈는데 알고보니 이미 부서진거였는데 제가 교탁에 가방을 던져놓는걸 보고 이용했던겁니다. 그돈으로 노래방 가거나 그러더라구요. 대학을 갈때 진로를 정하지 못하여 아버지의 들어가라는 직업학교 든지 기능대 같은곳을 제안받고 면접받고 실패마다 아버지께 얻어맞곤 했습니다. 직업학교를 다니던중 학교를 오가는 전용관광버스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방을 잡히고 따귀를 맞았습니다. 이유를 물으러 따라갔는데 제게 한말이 "피멍들기 싫으면 꺼져라" 너무 황당하더군요. 그학교를다니다 기능대 자리비었다고 예비합격에서 직업전문학교 그만두고 바로 그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보면 전부 아버지가 지정한 학교였고 어떻게든 졸업은 했고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어서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서울에 3D맥스 세미나 있어서 따라갔습니다. 뭔지 몰랐고 서울 여행한다는 들뜬마음으로 갔는데 3D Max라는 프로그램에 매력을 느꼈고 게임제작에 꿈을가지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관련 국비수업을 받기도 하면서 툴을 익혔습니다. 방황의 시기를 몇번이나 있었습니다. 게임관련학원은 거의 자비로는 가본적이 없네요.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드는 돈은 전부 아깝답니다. 친형이 있는데 저는 친형하고도 사이는 안좋았죠. 남들과 똑같다는데 좀 다르네요. 매정하고 저에 대해서는 소외시키고 친구들앞에서는 동생을 없는놈 취급 친형은 학업이 항상 우수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았죠. 그에비해 저는 비교되고 소외당했죠. JLPT N1시험 불합격 되고 친형에게 모질게 맞았죠. 효자손 모서리로 수차례 정수리를 가격당하고 집에서 내쫓기까지 어머니와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나 형이나 제가 정처없이 겨울밤을 지새며 저녘6시부터 오전7시까지 걱정하는 전회 한통 못받고 먼길을 갔다 돌아 왔습니다. 제게는 능력이 없어 묵을곳도 친구도없이 그저 밤새 돌아다녔고 아침에 돌아와 고장난 우리차 뒷좌석에 누워 잤습니다. 잠시뿐인 잠이었고 돌아갔을때도 차갑게 대했던게 생각나네요. 그당시 호흡곤란과 양손에 마비증상 두통까지 느낄정도였고 들어와 친형에게 서운하단 말 하면서 기절했었던게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이당시 막말로 바깥에 거지들처럼 살아봐라 라는 막말을 항상 쉽게 내뱉곤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모르게 신경정신과를 데려가 치료받게 했습니다. 강제로요. 2년을 받았고 바뀐것 없었습니다. 아까운200만원 날린셈이죠. 그당시 어떠한 *** 한적없었습니다. 아버지 멋대로 판단하고 보낸겁니다. 이런걸 인터넷에 썼지만 돌아온 대답은 사랑이네 라느니 비아냥만 들었고 저격글이나 인신공격 등 제본명을 써가면서 저를 물어뜯는 행동들을 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저만의 방이 생겼습니다. 기뻤죠. 그러나 아버지는 제방에 자신의 서류가득 들었고 보지도 않는 책들 모은 박스를 제방을 창고처럼 쓰려고 하자 저는 화가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때려 쫓아냈습니다. 어머니께 저를 ***이다 라고 메세지를 보낸 모양이더군요. 어머니는 저를 혼내기보다 잘했다고 다독였습니다. 이유는 어머니는 제 어릴적부터 친할머니와 아버지 한테 소외당했는데 한번도 어머니는 친가를 못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같이 가잔말 한마디도 안했고 친할머니는 어머니보고 오지말라고하고 오라는 연락도 안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말만 듣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폭행하고 했습니다. 신고도 하고싶었지만 아버지없이는 살수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집의 모든 재산을 가져가고 어머니께는 달랑 10만원가지고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화나셨었고 저를 오히려 다독이셨습니다. 정말 많은 소외감과 외로움에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더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기억나는걸 우선적으로 썼습니다. 저는 삶을 살면서 피해만 당하는 입장이었지 가해자 입장이었던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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