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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지 않는 사람
커피콩_레벨_아이콘LullabyM
·4년 전
어디서부터 틀어진건지는 모르겠어요.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제가 만들어온 삶이니 해결하는 것도 제 몫이겠죠. 그러려면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한 번 훑어야해요. 엄마의 인생은 가족에 의해 박탈당한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어릴때부터 줄곧 억울하다고 이야기 하셨었으니까요. 순진해서 몰랐다고 여전히 한숨을 쉬세요. 그런 엄마는 하나님한테서 큰 위안을 얻으셨어요. 그 댓가로 교회에서 직접 간증도 하고 교회에 헌신적인 삶을 사시고 계세요. 거기에 덩달아서 저도 어릴때부터 교회를 접하게됬어요. 그땐 엄마가 가자는대로 순순히 따라다니면서 기독교를 종교로 인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삶의 일부로써 당연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교회에서 성가대와 어린이 대회등을 하면서 받는 관심도 즐겼던게 기억이 나요. 성경이야기도 너무 재밌었고 구절을 암송하는거도 성가를 부르던 것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 그 시절의 제가 낯설게 느껴져요. 무엇보다 교회 사람들은 모두 천사처럼 다가왔으니 어린 마음으로 본 교회는 천국같았죠. 저는 모두가 교회에서 가르쳐준 십계명과 말씀을 따르며 사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  사람은 사람을 먹고 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 쯤이었어요. 미움과 시기를 받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초등학생이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 그냥 다 재밌다고 한 짓 이지. 따돌림을 당한 이유는 별 이유도 아니였어요. 나대서 싫다라니 그만큼 유치찬란한 이유도 없을거예요. 미술과 음악 그리고 언어에 재능이 있었으니 다른 엄마들과 친구들은 제가 눈엣가시나 다름이 없었겠죠. 엄마는 항상 무언가 제가 잘못한게 있으니 그럴거라고 하셨어요. 그 무리안에 있는 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게 무서워서 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붙어있는 것이라고. 제가 지금 따돌림당하는 것과 그 아이들이 아둥바둥거리는것이 도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는걸까요? 그렇게 힘들게 5학년을 끝내고 6학년이 되었을때는 따돌림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주변에 친구는 없었죠. 아마 말도 안되는 소문들 때문이었을거예요. 그래서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저를 괴롭히던 집단의 핵심인 아이의 개처럼 살았어요. 간식도 주고 심부름에 심지어 그 아이와 어떤 남자아이의 싸움에 끼어서 말리다가 부상을 입기도 했죠.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효과는 컸죠. 피투성이가 된 손을 벌벌떨며 양호실로 향할 때 부축해준 것은 다름아닌 그 아이였어요. 나중에서야 사과를 하더군요.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했다, 그 무리를 유지하려면 공공의 적이 필요했다고. 저를 뜯어먹고 자란 그들의 소속감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않아 졸업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그 일을 방관하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어른을 증오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가까웠던 엄마를 가장 원망했어요. 제 행동에 문제가 있다며 망아지는 매를 맞으면서 키우는 거라고 하셨죠. 괴롭힘 당했던건 저인데 맞는 것도 저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저를 기독교로 밀어넣은 장본인의 행동이 우습더라구요. 그렇다고 교회를 가지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한 지붕아래 왕은 엄마였으니까요. 믿음을 쑤셔넣는 엄마를 보며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 번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견딜 수 있는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 나를 강하게 키우시는 하나님, 폭력으로부터 나를 방치하시는 하나님, 방관의 하나님. 그딴 존재를 내 삶에 드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방황의 시기가 시작되었어요. 그 시기에 저는 제 또래아이들과 역사탐방 모임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어요. 엄마들끼리 애들의 견문을 넓혀준다고 결성한 모임이였어요. 하루는 역사탐방 대신 전시회를 가게됬어요. 팀 버튼이라는 영화감독의 전시회였는데 후에 그는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가 되었죠. 팀 버튼은 저도 모르고 있던 저의 감각을 일깨워준 사람이에요. 엄마에게 하나님이 있듯, 제겐 팀 버튼이 신이였죠. 그의 작품을 본 경험이있다면 아시겠지만 기괴하고 엽기적이다 라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하실꺼에요. 제겐 조금 달랐어요. 그의 세계는 너무 달콤했어요. 공허하고 모든것이 말라비틀어진 그야말로 죽은 세계였으니까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과 달리 어둠을 현실로 가져오는 그를 존경하고 신성시했어요. 그의 세계에 집중할 수 록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짧아져갔어요. 지금은 현실인지 망상인지 구분 짓지 않고 살고 있어요.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어요. 다시는 옛 일을 반복하지 않기위해서 제가 배운 것들을 활용해보기로 했어요. 저를 망가뜨린 무리들이 썼던 방법과 제 생각을 가미해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했었어요. 그때쯤 심리학에 관심이 두드러졌었던 것 같아요. 저의 접근 방식을 제가 예상했던대로 결과를 내주었고 그때부터 여러가지를 시도해봤던 기억이 나요. 물론 그러기위해선 재료가 필요했죠. 질풍노도의 청소년을 관찰하는 것은 제가 했던 것중 나름 흥미로웠던 경험에 속해요. 아이의 프로필, 그러니까 허점은 뭐고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가족관계, 비밀, 그리고 가장 어둡고 추악한 면을 끌어내는 걸 잘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런지 상담을 요청해오는 친구들도 많았고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댓가로 받으며 경험을 쌓아갔어요.  그랬던 저라고 사춘기가 안 왔던 것은 아니죠. 제 사춘기는 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으로부터가 기반이 되었어요. 끝없는 고민은 저를 현실로 부터 때어놓았고 머리속에 울리는 목소리들을 잠제우시 위해서 항상 음악을 꽂고 다녔어요. 그로인해 난청도 왔지만 그건 상관없었어요. 머리속 소리로는 당장이라도 복을 그어버리고 싶었으니까요. 제 목이든 그누구의 목이든 그건 문제가 아니였아요. 감정이 깊어질 수 록 이성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어요. 감정의 고삐를 잡기위해서 자해도 시작했구요. 사람들에겐 책상에 긁혔다, 동물을 키운다 등으로 덮으면서요. 자해는 제 새로운 취미가 되었고 자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대신 그어주기도 했죠. 자해는 제게 알 수 없는 쾌감을 주었어요. 한 번도 느껴본 적없는 감각이여서 그런지 더더욱 중독성있었죠. 친구들을 그어줄때는 더 조심해야했어요. 제가 느낄 수 없는건 좀 아쉬웠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묘미가 있었어요. 긴장감 넘치는 얼굴들을 기억하면 아직도 실소가 나오네요.  자해는 20살이 된 지금까지 쭉하고 있어요. 칼도 다양하게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번엔 제 닉네임 이니셜을 새겼어요. 신기한건 자해를 하면서우울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목적도 아니고 죽지 못해서 발악하는 행동도 아니에요.  그게 그냥 저라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였던거에요. 부모님이 제가 자해를 했다는 것 알아차리신건 2년 후였어요. 제가 알린건 아니고 제 흉터때문에 생긴 일이였거든요. 부모님이 알게되었을땐 계속 자해를 한 이유를 물어보셨어요. 이해할리가 없는 대답들을 엄마는 거짓말이라고 제 인지능력이 부족하다등등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저를 다그치셨어요. 그냥 맞았어요. 흉터를 지우기위해 여러 피부과도 상담을 다녔구요. 하지만 제 피부는 치료가 가능한 피부가 아니였기에 흉터를 가려라로 결론이 났어요. 엄마가 분노 하는 것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에요. 존재 자체가 역겨운게 흠이긴해요. 목소리 얼굴 모든 것이 혐오스러워요. 언젠가 저에게 했던 모든 것을 되갚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하죠. 저는 그 굴레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아닐 수도 있어요 이 글을 쓰면서도 수만가지의 다른 생각들이 저를 혼란스럽게해요 저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는 것같아요 아니면 너무나 뼈져리게 알고 있어서 도망치려는 건지도 모르죠 죽음이 너무 달콤하게 느껴져요 사실 여기 글을 올리는 이유는 생각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법을 알고 싶어서에요 생각을 멈추고 싶어요 뜬 눈으로 밤새우는 것도 지겹고 하루의 대부분을 멍때리면서 보내는것도 가짜들의 광대노릇을 하는 것도 전부 지겨워요 몰라요 죽고싶어요 뇌가 멈출 수 만 있다면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면 평안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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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ecil1122
· 4년 전
저는 쓴이님도 아니고, 쓴이님이 그동안 느끼고 사셨을 아픔이나 상처를 지금 쓰신 글만 읽고서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부분과 믿음이란 부분, 그리고 쓴이님이 자해를 하면서 까지 표출하는 깊은 우울감. 이 세부분만 보고 그냥 몇자 적고 가고싶은 부분이, 저도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온전하고 옳바른 믿음의 정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말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설사 나를 믿음으로 이끌어준 사람이지만, 가장 잘못된 형태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너를 깊이 헤아리고 이해하고 돕고싶다는 모습 뒤엔 그저 뼛속같이 위선자다 싶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을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아니 그냥 방관의 하느님이라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신도 사람도 용서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쓴이님이 쓴이님의 그러한 주위상황과 사람들을 “가짜”라고 칭하셨는데, “가짜”가 맞습니다. 잘못된 것도 맞습니다. 진짜 쓴이님을 위한 것이고, 옳바른 것이면 귀중한 사람 하나를 힘들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가짜들 사이에서 본인만는 본인을 “진짜”로서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신 향하는 태도가 본인만큼은 본인이 아파하는 방식이 아니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또렷한 대안을 가지고 쓴이님께 말을하는 것이 아니고, 저 또한 또렷히 찾지는 못했기 때문에, 참 답답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쓴이님 글을 보았을 때, 계속 스스로를 해하고 또 포기하기에는 굉장히 총명하고, 아까운 사람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당장 어머니를 용서하고, 쓴이님을 힘들게한 학우들과 교우들을 사랑하고, 믿음의 길로 회귀하고 등등의 말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쓴이님을 힘들게하는 상황과 사람들과 닮은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