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자라 시집가야하니 집안일을 배워 도와야하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왕따|폭력|싸움]
알림
심리케어센터
마인드카페 EAP
회사소개
black-line
커피콩_레벨_아이콘selffish
·4년 전
너는 여자라 시집가야하니 집안일을 배워 도와야하는거라고 하시기에 그런줄 알았다. 설거지나 동생, 아빠 식사 챙기는 일을 도왔다. 집에선 항상 고성이 오가고 물건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착하게 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사를 오고 나는 따돌림을 당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장소만 바뀔 뿐 어차피 다 같은 애들이었다. 여자애들은 내가 그전 왕따와 친하게 지내는데다 그 무리 중 대장격인 애보다 성적이 좋아서, 남자애들은 내가 못생기고 자기들에게 말대꾸를 한다고 싫어했다. 여자애들은 말로 상처주고 무리에서 배척했다면, 남자애들은 내 배에 발길질을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학교도 학원도 가기 싫었다. 학원이라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지만 들어주지않았다. 동생은 날 때리는 남자 무리와 친하게 지냈다. 중학생이 됐을땐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동생이 날 때리기 시작했다. 다른 집에서 사소한 남매싸움이 우리집에선 폭력으로 끝났다. 나는 동생을 한번도 때린적이 없지만 동생은 내 온몸을 때렸다. 목도 졸랐다. 칼도 들고왔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야 왜 동생은 시키지않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누나가 돼서 어린 동생한테 시키고 싶냐고 했다. 나는 계속 동생 밥을 차렸다. 밥투정이나 자기가 원하는 식으로 차려놓지 않았다고 성질 내는 동생에 대해 탄원해도 네가 누난데 어떻게 해, 참고 챙기라는 말만 돌아왔다. 내가 동생한테 맞아도, 칼로 위협당해도 끝은 언제나 같은 말로 맺어졌다. "너는 동생이랑 똑같이 싸우고 싶니?" 내가 좀 더 자라 오랜시간 우울의 늪에 잠겨있을때도 왜 너만 유별나게 구냐는 타박이 이어졌다. 동생은 멀쩡한데 우리집에서 왜 너만 이러냐고. 정신과를 꾸준히 다녀야한다는 의사선생님 말에 끄덕이던 일은 입원하는게 좋겠단 말에 없던 일이 됐다. 처음엔 울면서 힘들면 말을 하지그랬냐던 것은 병원 다닌지 한달도 안돼서 바뀌었다. 낫지도 않는거 왜 다니냐면서 왜이렇게 유별스러워서 날 귀찮게 하냐고 소리치던게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병을 극복했다. 졸업도 하고 취직도 했다. 나는 소개받은 다른 직장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계속 네 고집대로만 했으니 이번엔 자기 말을 들으라고 했다. 내 고집대로 간 학과에선 취직이 요원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이제 막 개업한, 남들에게 말하기에 나름대로 위신이 서는 직장에서 일하게 됐다. 직원은 나 혼자였다.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사장님은 직원을 늘리지 않았다. 오히려 최저시급 주는 것도 관대한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다 업무보러 가는 중 교통사고가 났다. 잘못된 초진으로 난 깁스를 하고 일했다. 난 쉬고싶었지만 집에선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하냐면서 그냥 깁스하면 된단 진단을 들어 계속 출근하라고했다. 사장님도 내가 출근하는데 별말이 없었다. 난 깁스를 한 채 안밖을 오가며 일했다. 그렇게 두달 뒤에야 입원했어야할만큼 좋지않은 상태임을 알게됐고 사장님은 나를 불러 원래 인건비때문에 그만두게 할 참이었음을 알렸다. 그제서야 집에선 화를 냈다. 그러나 돈이 없어 고용을 못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사장님은 퇴직 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으면 파트타임 알바라도 와서 하면 서로 좋지않겠냐면서 다 나으면 연락주라고. 나는 그냥 웃었다. 실직하고나선 치료만 받았다. 치료시기가 늦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장애가 남을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낫고 통증을 다스리는 치료를 하고있다. 그러자 공무원 얘기가 나왔다. 이번에도 이유는 같았다. 내 고집대로 하다가 이렇게 된거니까 공무원을 해야한다고했다. 사주에 그렇다고 했다. 어디가서 신입시작하기도 그렇고 딱히 뭐도 없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내 적금 얘기가 나왔다. 회사다닐때 최저 받으면서 얼마안되지만 악착같이 모은 돈이었다. 약 n천만원 정도로 많은 돈은 아니었다. 집 사는데 돈이 모자라다고 하시기에 마침 곧 만기라 내가 가지고 있는돈 거의 전부를 빌려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동생 명의였다. 동생에게 집을 사준 것이었다. 남자앤데 결혼할때 아무것도 없을수는 없지않냐면서. 나는 황당했다. 노후준비 때문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라니. 나는 지금도 그때도 동생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동생이 또 내 목을 조르고 얼굴을 주먹으로 친 후로 서로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다. 내 돈만으로 사준 집은 아니었지만 일부라도 들어간게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이제와서 돈을 돌려받아봐야 곤란한건 동생이 아니었기에 그냥 참았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사주에서 말한대로 20××년까지 공무원 안되면 민폐니까 나가살라고. 맞다. 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자식임에 틀림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엄마에게 서운한 맘이 드는건 아직도 철이 덜 든 머저리라는 반증이겠지. 전부 자세히는 적지않았다. 빼먹은 사건도 있지만 이정도만 적어도 내가 자기연민에 가득찬 쓰레기라는건 증명이 될거다. 여기 이 글을 등록해서 서운한 맘이 들때마다 보고 정신차려야겠다.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
선물상자 이미지
따옴표

당신이 적은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댓글을 한 번 남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