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스트레스|결핍|왕따]
알림
심리케어센터
마인드카페 EAP
회사소개
black-line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비공개_커피콩_아이콘비공개
·4년 전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제 인생에서 제 감정이 격해졌던 일들에 대해서 늘여놓고 싶어요. 어렸을 때 계곡에서 놀다가 동생한테 돌을 맞은 적이 있어요. 사촌 오빠들이 비치볼을 자기한테는 안 던져준다는 이유였죠. 피가 흐르고 머리가 땡땡 부어서 몇 달 간 남들 눈에도 상처가 보였고, 10여 년 간은 머리카락을 올려다보면 옅은 상처자국이 남아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아마 부모님은 그 상처가 10여년 간 남아있었는 줄도 모를거예요. 또 어느 생일 날에는 동생이 내 눈으로 폭죽을 터트린 적이 있어요. 아파서 우는데 돌 맞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얘는 언젠가 나를 죽일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나네요. 어제 봉사활동을 하는 아동복지센터에서 폭죽을 들고 장난하는 아이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설명해주다가도 살짝 울컥했어요. 돌을 던졌을 때도, 폭죽을 터트렸을 때도 부모님은 동생을 제대로 혼내지 않으셨어요. 이정도는 괜찮다고 하셨죠. 우는 나를 달래려고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억울했어요. 아니, 어쩌면 내 기억보다는 많이 혼내셨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겐 충분치 않았어요. 내가 똑같은 짓을 했다면 더 많이 혼냈을 거란 걸 알았으니까요. 나는 어디까지나 동생을 지켜야할 장녀고, 동생은 어디까지나 아이이니까요. 나는 그런 세뇌에 빠져서 둘이 놀다 함께 물에 빠졌을 때, 나를 물 속으로 밀어넣으며 자기는 살려는 동생을 살리려고, 물 속에 밀어넣어지면서도 동생을 놓지 않았어요. 동생한테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도 초등학교 때부터 동생밥을 차렸고요. 라면먹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하여 혼자 라면끓여먹는 동생을 보며 침을 삼키며 먹기 싫은 반찬을 먹었어요. 나까지 안 먹으면 왜 해놔도 안 먹냐는 큰소리가 내게 날라왔거든요. 한 번은 동생이랑 싸웠던 것 같아요. 아빠가 복도에서 돌아와 큰 소리를 치셨는데, 동생 말만 듣고 저를 혼내셨어요. "하지만..."까지만 나와도 제가 말을 할 수 없게 더 크게 소리를 지르셨어요. 아, 나는 평생 이렇게 억울하게만 살겠구나. 아빠는 내 말은 절대 들어주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죽으면 그제서야 내 말을 들어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파트 베란다로 달려갔어요. 방충망까지 다 열자 아빠가 내 뒷덜미를 잡아 안쪽으로 던지셨죠.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홧김, 충동, 그런 거였어요. 가장 어렸을 때, 그리고 가장 강하고 강렬했던 자살시도 경험이네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그 당시의 아버지는 가부장주의 속에 계셨어요. 항상 당신의 누나가 당신을 기르셨다는 말을, 너도 그래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사셨어요. 중학교 첫 시험을 마친 날, 정말 오래 긴장하고 준비했던 첫 시험을 마치고 드디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티비를 보고 있었어요. 아빠가 돌아오셨고, 전 얼굴을 맞았어요. 거실에서 동생이 공부를 안했다고 엄마한테 혼나고 있었거든요. 넌 왜 티비를 보고있냐, 쟤가 공부를 안 했으면 니가 공부를 도와줬어야지, 그러셨어요. 다시 말하지만 전 중학교 첫 시험을 치느라 걔보다 더 힘들었고 열심히 했고 나 하나 챙기기도 바빴어요. 제가 엄마한테 검사맞아야 하는 공부를 안 했을 때는 일러 바친다는 걸 내 약점으로 잡던 애고요, 내가 혼나는 동안 아빠랑 같이 안방에서 티비보던 애인데요. 다행히 오랜 가출에 미안하셨던 탓인지, 시대가 변하고 함께 변한 탓인지 아버지는 많이 변하셨어요. 아마 지금 제가 이런 말들을 한다면 그런 일 없었다고 생각 안난다고 하실테죠. 본인한테만 편한 성격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두 번째 자살시도는 동생이 집 밖으로 나갔을 때예요. 동생과 제가 싸웠고, 동생이 집을 나갔어요. 아빠는 늦게 오는 날이었고 엄마는 모임을 갔다 늦게 오신다 하셨죠. 나는 억울했어요. 동생이 잘못한 건데(아마 동생이 잘못된 일을 해서 잔소리를 하다 싸운 경우 같아요), 동생이 가출을 했으니 내가 혼나겠구나. 엄마한테 울면서 동생이 밖으로 나갔다 알리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다소 녹슨 커터칼로 손목을 비비적 댔어요. 차마 깊숙히 찌를 용기는 안 났어요. 그렇게 그 날 밤 제 일은 아무도 모른 채 저만 아는 상처가 몇 일 간 남아 있었어요. 수능을 쳤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가장 자신있었던 수학이 1등급에서 3등급으로 떨어질 정도였죠. 가장 막막했던 건 나예요. 엄마는 시험치고 돌아온 날 고기를 사주셨어요. 수고했다고. 그리고 어땠냐는 물음에 못쳤다고 말했어요. 엄마는 생각보다 괜찮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얼굴이 굳어지셨어요. 점수가 나온 날, 나는 점수가 잘 안나왔다고 했고, 엄마는 그때부터 몇 달 간 나를 사람취급하지 않았어요. 돌아오셔서 다녀오셨습니까 인사를 해도 나를 무시했고, 야식을 만들어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말을 섞지 않은 건 당연했죠. 나는 내 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얼음성에 있는 것 같은 추위를 느껴야 했어요. 대학교 이야기에 이제 니가 알아서 하라고,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혼자 대학 설명회를 다녀오며 아, 내가 잘되지 않으면 가족도 나를 버리는구나, 정말 세상은 나 혼자 살 각오로 살아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되새김질 했어요. 나중에 어머니께 이 일을 말씀드리자, 나는 너한테 나쁜 말을 안하려고 그런 거라고, 내 최선이었다고 그러며 울었어요. 정말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나인데, 가장 막막했던 것도 가장 좌절했던 것도 나인데, 엄마가 가슴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어요. 고3, 한창 공부하던 시절 저는 왕따를 당했어요. 한 사람의 주도로 인한 왕따였죠. 그 녀석은 주로 한 명의 타깃을 정해 그사람을 욕하며 놀았어요. 뻔히 들릴 거리에서 욕을 하고, 같은 그룹의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여기 재밌는 거 있어! 이리 와 봐!"라며 친구를 불러 왕따의 대상과 이야기를 못 나누게 만들었어요. 평소 왕따를 하지 않는 친구한테도, 가령 서로 너는 뭘 닮았다라고 말할 때 "야, 너는 닭이랬지? 너 닭 닮아서 그렇게 입이 튀어나왔나 보다"라며 놀리며 놀길 좋아했고, 저는 그때마다 얼굴을 굳혔지만 정작 당하는 친구들이 웃고있어 아무말도 못했어요. 2번 정도의 왕따를 지켜보며, '아, 이건 왕따구나. 돌아가면서 시키는. 쟤는 남을 욕하면서 밖에는 친구를 사귈 수 없는 애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녀석이 왕따 대상과 이야기하고 있는 저를 부를 때 저는 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를 왕따하기 시작했죠. 어느날은 밥을 먹고 학교 앞 공원을 갔는데(같은 그룹이라도 그 안에서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은 왜인지 모르게 나뉘어져있었어요.), 그녀석이 있었고, 그녀석은 저와 같이 온 친구들을 보고 "야, 이쪽으로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쟤랑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것도 싫고, 같은 공기 마시는 것도 더러워."라고 그랬어요. 저랑 같이 밥을 먹고 온 친구들은 "아, 니가 말한 데가 여긴 줄 모르고..." 그럴 뿐이었어요. 그날 나는 그해부터 반마다 생겼던 2명의 또래도우미에게 사정을 말했어요. 둘 다 우리 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 줄 몰랐다고 했죠. 그도 그럴게, 그녀석은 만만한 그룹에 들어와서 만만한 사람들 앞에서만 그러고 다녔으니까요. 친구들은 마음이 약해(?) 모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친구 욕을 하면 침묵하고, 자기욕을 해도 웃고 그런 애들이었으니까요. 나는 그런 나머지 아이들을 설득만 해줘도 될 것 같다고 말했어요. 오라고 할 때 내가 왜 가야 하냐고 답하고, 누군가를 욕할 때 왜 그렇게 말하냐고 나는 듣기 싫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바뀔 거라고 말했죠. 그때 또래도우미들이 설득한 4명의 사람들 중 2명은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 중에는 왕따 당할 때 제가 같이 있었던 사람도 있었죠. 나머지 두 명은 자기한테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 괜히 나서고 싶지 않다고, 분위기 망치기 싫다고 말했어요. 나와 같이 밥을 먹고 그날 그녀석한테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을 때 옆에 있었던, 그 2명이에요. 그래도 상황은 확연히 바뀌었어요. 친구들이 그러지 말라고 할 때마다 "얘 왜 이래?"라며 다른 친구들한테 또 상대방의 욕을 했겠지만 이제는 더이상 통하지 않았죠. 그리고 어느날 제안을 거절했던 2명은 다른 반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온 건지, 다른 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녀석을 욕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괜히 제가 역으로 그녀석을 따돌린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침묵했어요. 그녀석의 나쁜 행동은 더이상 먹히지 않았고, 그렇게 멀어져 갔어요. 이 기억은 자존감이 있을 때는 나 자신에 대한 당당함으로, 자존감이 없을 때는 말로써 입은 상처로만 남게 되었어요. 대학교에 가서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어요. 부모님과 떨어지니 마음도 편하고 상처받을 일도 줄어들었죠. 연애도, 이별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학기, 중국인 룸메이트와 한 방을 쓰게 됐어요. 봄에서 여름으로 가며 기숙사에서는 에어컨을 가동했고, 저는 에어컨을 틀어도 되겠냐 했죠. 그 아이는 싫다고 했어요. 그럼 10분만 트는 건 괜찮냐고 했어요. 그제껏 기숙사에 살면서 그 정도도 배려 못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10분, 네가 참으라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이었어요. 학기 말에는 진짜 몸싸움도 했어요. 정말 동생하고도 몸싸움을 안한 지가 6년은 넘겼을 때일 거예요. 짐 빼던 날, 그녀석이 목을 조른 흔적, 목을 햘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어요. 몇 달 동안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이 있었어요. 사진은 찍어뒀지만 쌍방 폭행이 될 것 같아 신고는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는 폭행이어도 저쪽은 살인미수 정도는 되지 않겠나 싶었죠. 도저히 못 참고 간 병원에서 큰일날 뻔 했다고 하셨거든요. 그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저는 비슷한 사람만 봐도 심당이 쿵쾅쿵쾅 뛰었고, 기숙사를 나왔어요. 1년이 지나 집을 옮겨 전셋집을 찾았어요. 채무도 많지 않은 드문 전셋집이었고 리모델링을 한 상태였죠. 그때부터는...악몽이었어요. 대략 2개월에 한 번씩, 윗집 에어콘 청소를(?) 하다가 물을 안 잠가 천장에 곰팡이가 피거나, 하수구 물이 안 빠지거나, 물탱크가 고장나 물이 흐르는데 하필 우리집으로만 새어들어온다거나...결정적인 건 결로였죠. 벽을 따라 침대 뒤까지 번져 집주인에게 말하고 닦아 냈지만 외벽에 있었던 붙박이 옷장에 곰팡이가 한가득 피어있을 줄은 몰랐어요. 집주인은 가구도 바꿔주고 가습기도 놔주고 다시 안 피는지 살펴주겠다, 아니면 윗집으로 집을 옮겨도 좋다고 했고, 저는 똑같이 곰팡이가 필지도 모르는 윗집보다 관리해주기로 약속한 그 집을 선택했어요. 그냥 그때 저는 뭐라고 하든 집을 나왔어야 했어요. 집주인은 가구만 바꿔주고 연락을 씹기 시작했죠. 이번에는 이상하게 바닥에서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어요. 딱히 물기있는 물건을 두는 곳도 아닌데 말이에요. 전셋집이 귀해서 다시 팔 때는 자기한테 맡겨주면 두 달 안에 내보낼 수 있다던 중개업자는 모른척했고, 관리인도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없다며 집주인에게 연락하라는 말만 반복했죠. 내용증명을 써서 보냈는데 돌아왔어요. 우체국 아저씨가 추가금을 내야 된다고 하더군요. 잘 보내고 내는 추가금도 아니고, 이렇게 돌려받아서 내게 되는 추가금은 더욱 아팠어요.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배를 갈라 중개업자 문 앞에 피칠을 하고 집 안 곳곳 피로 물들인 다음 방 안에 누워 죽고 싶었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죽고만 싶어서 생각을 안하려 애썼어요. 먹지도 않고 잠만 잤어요. 전세 계약은 2년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1년만 더 참으면 된다는 걸 아는데, 그 사실을 되풀이 해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그 집에 묶일 내 2년이 너무 아깝고 절망스러웠어요. 엄마는 자기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다른 집으로 옮겨 집을 비우고 우리가 집을 내놓을 건지, 그냥 거기서 살건지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했어요. 왜 나가고 싶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나가면 주소를 옮겨야하고 주소를 옮기면 전세금을 못돌려받을 것 같았어요. 전세금이 내 것이었다면 도박을 해서라도 나왔겠지만 관리비나 월세는 내가 내도 전세금은 엄마 거였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 다른 집을 발품팔아 다녀봤지만 이제 어느 집을 봐도 절망스러운 생각 밖에 안들었어요. 자꾸 재촉하는 엄마에게 결국 너무 죽고싶은 생각만 든다고 말해버렸어요. 며칠 뒤 엄마는 주소는 그대로 두고 본가로 올라오지 않겠냐 하셨고 너무 지쳐있던 나는 결국 그러기로 했어요.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본가였는데. 겨우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엄마의 한숨에서 벗어났는데. 그로부터 1년. 그 때부터 우울함이 잘 가시지 않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문 드문 들었어요. 그 전에는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서, '아, 이런 생각이 습관이 되버렸구나. 하지 말아야지.' 그랬는데, 점점 더 우울함은 커져만 가네요. 집에 돌아와 가장 우울할 때는 동생때문에 엄마가 서운하게 만들 때예요. 부모님 사이가 예전부터 안 좋았어요. 대부분 아버지 쪽의 잘못, 친가와 주식, 술과 관련된 문제였고, 잘못하고도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가출을 하셨어요. 엄마는 매일 같이 한숨과 발작같은 울음을 터트렸어요. 엄마는 저도 동생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요. 우리가 싫어하는 표정을 짓고 외면하려고 한다고요. 하지만 싫은 걸 어쩌겠어요. 우리도 중고등학생이었어요. 나는 이혼해도 아버지의 회삿돈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극단적인 하향지원을 생각했고, 동생은 내가 대학교에 가 집을 떠난 후에는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학교에서 했다고 해요. 우리도 그 상황을 감당하고, 암담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기에 벅찼어요. 싫은 걸 꾹 참고 듣는 게 최선인 걸 어쩌겠어요. 싫은 걸 꾹 참고 듣고 있어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하는 엄마를 이해해도, 그런 엄마에게 화가 나는 걸 어쩌겠어요. 들을 때마다 더 암담해지는 미래로 우울함이 새겨지는 걸 어쩌겠어요. 아무튼, 아버지의 가출 초기에, 동생은 이혼하면 나는 결혼을 어떻게 하냐 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우리 신경쓰지말고 이혼해서 엄마가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그 당시에는 동생처럼 붙잡아주길 바랬나 보더라고요. 나를 비난하더니 그때부터 동생에게 감정적으로 많이 기댄 것 같아요. 아버지가 가출한 상태에서 유일한 남자이기도 했고요. 어릴 때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항상 극단적인 동생편이었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은근히 동생에 대한 애정이 더 많으세요. 그걸 느껴요. 그래도 대학에서 떨어져있을 때는 '그래, 동생이 나보다 더 엄마에게 잘해주니까 더 좋아할 수도 있지'라며 성숙하게 생각할 수 있었는데, 본가에 오게되며 스스로도 놀랄만큼 유치한 열등감을 느껴요. 얼마나 유치하냐면 먹을 걸로 너무 서운해져요. 그러면서 또 어릴 때부터의 서운함이 몰려오는 거죠.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넌 동생이나 아빠완 달라서 살찐다고 라면 먹지말라고 했을 때 그 말은 내게 상처가 되었어도 그때 한 번 먹었다고 돼지가 되진 않았을 거라든가. 독서실 가기전 핫도그를 들고 왔을 때 내가 좋아한다고 잔뜩 뿌려온 케찹, 우리가 좋아한다고 매번 만들었던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는 나는 싫어해 입도 잘 대지 않던 거였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돼지김치찜은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동생입으로 다 사라졌다든가. 최근에는 동생이 주말에 와선 제가 사온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네, 차갑게 얼려먹는 그 아이스크림이요. 동생이랑 저는 대화를 잘 안하니까 엄마한테 아이스크림 어디갔냐고 했어요. 엄마는 동생이 먹는 걸 보고 그거 니거라고 했고, 네 방문이 열려있길래 들은 줄 알았다고 했어요. 그러고는 먹었는데 어쩌겠냐고 그러고 끝이었어요. 일반적인 일이죠. 일반적인 일인거 아는데 화가 났어요. 그게 동생부탁은 꼬박꼬박 나한테 하면서 내 질문 하나는 동생한테 전해주지 않는 황당함과 이어졌는지, 내 아이디를 해킹해놓고도 뻔뻔하게 나오는 동생을 두고 내가 어쩌겠냐며 넘어가던 어이없음과 이어졌는지, 동생 건 먹지말라며 경계쳐두고는 비싸다고 안 사먹는 아이스크림 내가 너무 먹고싶어서 사넣어뒀더니 그냥 그러고 넘어가는 억울함과 이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화가 났어요. 스스로도 너무 유치해서 더 말하지 못했던 그런 일들이였죠. 취업문제로 자존감이 낮아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애정결핍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른 사람하고는 저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는데, 꼭 엄마와 동생사이에서는 비교하고 서운한 감정이 생기거든요.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봐도 의지력이 생기지 않는 걸 보면 나는 평생 취직 못하겠구나 싶고, 엄마를 볼 때마다 서운한데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불이 터지고, 맨날 부딪치는 아빠를 봐도 짜증이 나요. 기간을 재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근 3주 정도는 거의 매일같이 자살 생각을 해요. 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이야기가 중구난방이죠? 내 마음이 그래요. 이게 취직에 대한 우울인지, 취직하면서 집안에 있는 일이 많아 생긴 우울인지, 아니면 부모님에 대한 무엇인지, 집 곰팡이 문제때부터 계속 이어져 오던 우울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서, 가장 최근에 기폭제가 되었던 아이스크림 사건을 가지고 엄마한테 화를 냈어요. 우울함을 달래러 갔던 매장에서 더이상 그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더라고요. 왜 화가 나는지 내 마음도 잘 모르고 화를 낸건데 씨알이나 먹혔겠어요? 어떻게 설명하면 될지 모를 이 서운함과 우울함은 전달하지 못하고, 유치원생이나 하는 소리다, 창피해서 어디 얘기도 못하겠다, 언제까지 그 과거를 들먹일 거냐, 그런 소리만 들었어요. 다 맞는 말이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이제껏 말하지 못하고 쌓아온 건데요. 나도 쪽팔려요. 아이스크림에 서운하고 우울해지는 나도 쪽팔리고, 시련을 못이겨 결국 내 정신을 좀먹을 걸 알면서 본가로 돌아온 나도 쪽팔리고,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아파하는 나도 쪽팔리고, 떳떳하지 못할만큼 의지력 없는 나도 쪽팔려요. 하지만 응어리진 채로 이제껏 살아온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응어리진 채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잊어야 하나요? 이미 나를 아플만큼 아프게 하며 내 안에 깊게 남은 일들을 잊고 모든 사람들과 하하호호해야 하나요? 자고 일어나도 좋아지지 않아서, 쪽팔리고 한심하고 추하고 못났고 잘 될 자신이 없어서, 그때 죽을걸 왜 힘들게 여기까지 살아왔을까 생각하게 되어서, 보이는 물건마다 자살을 생각하게 되고, 창밖 풍경이 늘 그렇듯 아름다운데 추워 보여서, 그러지 않아보려고 자살예방센터 같은 걸 검색해보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모르겠어요. 살다보면 뭐가 달라질까요? 본질적인 나는 그대로일 텐데. 오늘 이 순간에 대해서도 "차라리 그때 죽을 걸"이라고 말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글이 길어요. 제대로 끝까지 못매듭지은 이야기도 많고요. 한편으로는 글이 길수록 사람들은 안 읽을테니 마음 편히 이야기하기도 했네요. 이 창을 나가고 싶지 않아요. 나가도 다르지 않은 현실이 있고, 다르지 않은 내가 있고, 어찌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견딜 수 있을까요.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
선물상자 이미지
댓글 1가 달렸어요.
커피콩_레벨_아이콘
neu00
· 4년 전
예전부터 너무 나쁜 사람들때문에 애꿎은 글쓴이님이 상처를 많이 받으신것 같아요. 속상한 마음을 누구한테 말할 기회도 없었고, 다른사람들은 자기가 아무생각 없이 하는 이야기나 행동들이 잘못된것이라는 것 조차도 모르니 정말 많이 속상하셨을것 같아요. 사실 저는 긴 글을 다 꼼꼼하게 잘 보지는 않는편인데 글쓴이님 이야기는 끝까지 다 읽게 되었네요 ㅎㅎ 읽다보니 저도 화가 나는데 글쓴이님은 얼마나 화가나셨을까, 얼마나 한이 맺히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동생이 있는데 동생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동생한테 짜증이 날때마다 짜증이 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유치하게 느껴져서 너무 기분이 더럽더라구요. 그래서 글 읽는 내내 공감이 가기도 했어요. 글쓴이님이 굳이 모든사람들과 지내야 할 의무도 없고, 스스로를 쪽팔리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오늘 하루도 버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