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웃는 애들이 상처가 많더라
까똑... 까똑... 조용한 공간을 울려퍼지는 이 소리는 나를 긴장시킵니다. 혹시 누군가 나에게 1:1로 톡을 보낸건 아닌지... 누가 나에게만 말을 걸고 이 톡에 또 답장을 해야 하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게 나는 무척이나 부담스럽습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예요. 잘 지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죠. 근데 그들에게도, 난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냥 가볍게 물어보는 톡이 와도 '1' 숫자가 없어지면 바로 답을 해야 되는게 너무너무 부담스럽고 머라고 해야 될지 잘 모르겠고 그냥 단답으로 대답하고 얼른 대화창에서 나와버려요. 저는 진짜 왜 이런 걸까요? 왜 이렇게 생겨먹은걸까요? 혼자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 봤어요. 난 나를 드러내는게 무서운게 아닐까? 상대방이, 심지어 친한 친구라도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 두려운건 아닐까... 혹시나 내가 실수할까봐, 그래서 상대가 별로라고 생각할까봐,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될까봐 그게 무서운가 봐요 ㅠㅠ 차라리 모르는 사람은 괜찮아요. 뭘 사거나 주문할 때, 길에서 누군가 뭘 물어볼 때는 괜찮아요. 잠깐만으로 그들은 나를 무어라 판단할 수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3명 이상 여러명 있을 때도 괜찮아요. 모든 시선이 나에게 주목되진 않으니까요. 근데 혹여나 누가 지하철역까지 십여분 둘이 같이 걸어가자고 한다던지, 점심을 둘이서 같이 먹자고 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머리도 좀 아프고 표정도 굳고 그러는거 같아요. 내가 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거 같아요. 내가 나를 외롭게 만들고 있는거 같아요. 노력해야 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바보 같이... 이런 내가 참 밉고 싫습니다... ㅠㅠ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요. 저는 게으르고 시간개념도 없고 예쁘지도 않아요. 거짓말은 밥먹듯 하고 농담도 못 받아들여요. 눈치도 없고 제가 말만 하면 대화가 툭툭 끊기고 재미도 없어요. 자꾸 남들 눈치만 보고 또 한편으로는 무식하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꾸 제 자랑만 해요. 자꾸 투정만 하고 부정적인 얘기만 늘어놓아요. 그래도 사랑받고 싶어요. 그런데 사랑 받을 수 없어요. 사랑 받을만한 요소가 없거든요.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해야만 자신감도 생겨서 그나마 남이 날 사랑할 이유가 만들어질텐데 저에게 장점이 전혀 없어서 그럴 수가 없어요. 어쩌죠? 저 정말 ***같아요. 장점이 없어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요.
저는 눈치를 너무 많이 봅니다. 누가 날 막 대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는데도, 말을 못해요. 이렇게 말해야 되나, 내가 혹시 이상한건가, 말했을때 반응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만 머리에 가득하죠... 늘 최악의 사태들만 떠오릅니다. 다 나를 외면하고, 왕따 당하고, 뒤에서 다 내 욕하고... 머 이런 상상이요. 이러다보니 사람을 잘 못 사겨요. 저는 늘 스트레스 받고요. 남 눈치는 엄청 보면서 그렇다고 눈치가 빠른 편도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의중을 잘 읽어내거나 센스있는 편도 아니예요 ㅠㅠ 저 정말 별로죠? 이런 제가 화를 내도 될까요? 어떻게 하면 말할 수 있어요?
너랑 제일 가까운 사람이 너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버려
생리 ***은새끼
이렇게 살고싶었던게 아닌데
나 빼고 다 괜찮아보여
안녕하세요. 이제 더는 혼자서 아픈걸 견딜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남겨요. 저는 1. 나 혼자 진실했다가 버림받는 것 2. 나 혼자 정직했다가 상처받는 것 3. 나 혼자 믿었다가 배신당하는 것 4. 날 좋아해줬던 사람이 변하는 것 5. 타인에게 상처주는 것 을 매우 비정상적으로 두려워해요.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누군가 저를 좋아한다 해도 금방 식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해요. 가까워지면 상처주고, 결국 멀어지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어서 벽만 치고 있어요. 그 경험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망가져버린것 같아요. 지금 저는 매일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자해를 해요. 자기 혐오가 엄청나서 자존감도 없고 자신감도 없어요. 이런 제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하지도 않구요. 또한 사람을 만나고싶지 않아졌어요. 그래도 잘 살아보자 하고 제가 되고싶은 모습들을 적어봤는데 다음과 같아요. 1. 대범해지는 것 2.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3. 잘못된 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용기, 힘, 긍정적 태도를 갖는 것 4. 누구에게나 항상 친절하고 배려하며 잘 웃어주는 것 5.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타인에게 손 내밀줄 아는 것 6.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이렇게 적어보아도 여전히 제게 희망같은건 느껴지지 않아요. 저는 이미 쓸모없고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이 좌절을 이겨내기에는 제가 이미 너무 많이 아팠고 그 결과 극복해낼 힘이 다 빠져버렸어요. 그냥 죽으면 모든 게 끝날까, 편안해질까 이런 생각만 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0대가 되었어도 본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직업조차 무엇을 해야할지 어떤걸해야 나에게 맞는 일을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에 대해 알려면 어떻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린시절은 장녀, 착한아이 콤플렉스, 강한 인정욕구로 부모님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길만 걸었습니다. 20대 후반에서야 겨우 제가 선택한 길을 걷다가 좌절도 겪으며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꾸고 바꾸어 현재는 흐지부지 아무것도 아닌 하고싶은것만 막연히 많은 백수가 되었습니다. 직장도 막연히 상상속의 꿈의 직장에 다니고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이 아닌걸 알기에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직업도 없는 백수가 스스로에 대해 알기 위해 하고싶은걸 선택하기엔 늦은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너무 괴롭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서 무슨일이 닥치거나 무언갈 선택함에 있어 빨리 선택하고 대처하고싶어요. 본인이 본인에 대해 잘 모른다는게 괴롭기만 하네요
하루 종일 불안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아진 요즘. 정말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려야 하는 걸까.
제 나이가 이제 만으로 27살이 되는데 엄마가 다른분과 옆집에서 동거로 사시는게 3년째 됬습니다.서류절차는 안했어요. 저는 아버지가 없이 컸기때문에 아빠와 딸의 관계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10년전부터 봐오던사이라 막 거리를두고 그러지 않고 부모님대하듯 안마해드리고 영양제 챙겨드리고 하거든요.근데 제가 너무 이쁘다면서 엄마가 없을때만 입에 뽀뽀를 합니다. 엄마해드리면서 같이 포옹도 해드리는데 온몸이 밀착되게 꽉 끌어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엄마 안계시거나 안보실때요.가슴은 다 눌리는 정도로요.아래쪽도 닿을까봐 저는 되게 불편한데 ...애정표현이라고만 합니다. 입에다 뽀뽀하는건 제가 두번째 뽀뽀 했을때부터 싫다고 불편하다고 (좀 소극적으로)엄마 안계실때 말했어요.(첫번째는 너무 충격적이라 놀래서 넘어가 버렸구요) 새아버지가 성격이 소심한 분이고 여자애들이 아니라 남자애들만 자식으로 있으셔서 여자애들에 대한건 잘 모른다고 자주 말하시거든요. 거절이나 이런걸 수치심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받아들여서 제가 조심하는편이고 저희 엄마는 화를 잘 내셔서 처음이니까 모르고 하셨거니 싶어 개인적으로 말한거거든요.저는 이런게 처음이고 제가 사회성이 부족해서 손이나 볼이 좀 덜덜 떨리면서 말했어요. 근데 그때 제가 들은 말이 친아빠면 이런소리 안듣는다고, 원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니가 예민한거라고 하더라구요.어쨌든 니가 싫다니까 안하겠다구요.근데 엄마한테는 분명 화부터 낼테니까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그래서 제가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으니 알았다고 말했어요. (제가 시험준비하느라 친구를 다 끊어서 친구가 없어서 물어볼데가 없지만, 보통 중고등 학생만되도 아빠랑 입에 뽀뽀는 안하지 않나요?;;) 그러고서 좀 시간이 지나서 엄마가 화장실가시거나 그럴때 머뭇거리다가 또 포옹하면서 "잘지냈냐고" 말하면서 입에다가 뽀뽀를 해서 쟤가 싫다고 다시 말한게 3번째로 뽀뽀했을때입니다. 제가 시력이 한쪽은 근시고 한쪽은 원시라 안경을 안쓰면 반응속도가 느려요.그래서 거의 일어나고 난 후에 화가나요.언제하겠다는 예고도 없고 포옹하려는것 처럼 하다가 갑자기 잊을만하면 그러거든요. 싫다고 말하는것도 일이 일어났을때 바로 말하지 못하고 다음날 따로 시간을 내서 말씀드릴거 있다고. 하면서 말했어요. 3번째에는 그전에 내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나해서 나는 이런거 불편하다고.정말 싫다고 말했거든요. 근데 잊을만하니까 어제 또 엄마 씻으러 들어가니 꽉 포옹하길래 인상좀 찌뿌리면서 고개를 드니까 또 입에다가 뽀뽀를 하는거에요. 입에다 댔다 때기만하는게 아니라 약간 아랫입술을 잡는 느낌으로요. 너무 놀래서 아무렇지 않은척 집에 왔다가 스스로한테 너무 화가나서 아침에 바로 옆집으로가 엄마랑 두분다 앞에 두고서 입에다 뽀뽀하는거 싫다고 어제 바로 말했어야했는데 지금 이라도 바로 말하려고 왔다고 하니까 새아버지 눈이 커지시고 손을 좀 떠시더라구요. 쟤가 그렇게 말하니까 바로 예전에 여름에 한번 한적있고 지금 한번 한거라고 엄마한테 말하면서.그러면서 저에게 알았다고 만 말하고 끝냈어요. 그전에 저랑 둘이 얘기할때도 알았다고 말하고 끝이고. 아침이었고 두분다 계속 야근중인 상태라 피곤해보이기도 해서 거기서 두번이 아니라 네번째 한거라고 말 안하고 출근준비하셔야해서 돌아왔어요. 저녁때 엄마가 먼저 퇴근해와서 어떻게 된거냐고 묻길래 있는그대로 말하고 어떻게 했는지 직접 엄마한테 시연해드렸죠..이런게 좀 불편하다구요. 입에뽀뽀는 4번에. 밀착해서 꽉 안는건 6번도 좀 넘고(가슴이 다 뭉그러지는정도.그것도 항상 정면으로 포옹) 가슴을 얼렁뚱땅 두손으로 옆구리 간지럼 피다가 정면으로 만진것 1번. (가슴에 손이 3초는 있었습니다) (가슴만진건 실수였나 싶지만 있는건 다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하고 퇴근해서 온 새아버지하고 싸우고서 저를 다시 불렀는데 그분 하시는말이 내가 치한이냐고, 친아빠여도 이런 취급을 받냐고, 예쁘다고 한 애정표현가지고 별것도 아닌데 문제를 만드냐고, 그러면서 저한테 왜 엄마한테 말을 옮겨서 싸움을 붙이냐고 하더라구요. 기분이 아주 더럽다구요. 그러면서 자기가 정말 그란 불순한 생각을 했으면 저랑 둘이서 노래방갔을때 어떻게 했을거라고. 저는 싫다고 이번까지 싫다고 말한게 세번째이고 뽀뽀한것만 네번째인데 내말을 무시해놓고 이게 처음도 아니고 할때마다 내가 싫어하는걸 알텐데 했잖냐고. 그리고 별것도 아니라면서 왜 엄마에게 말하면 안되냐고 막 따지니까 따진다고 뭐라고 하더라구요. 되려 화를 내면서 미안하다고 안한다고 했으면 됐잖냐고.피곤하고 정신없으니까 이 얘기는 이제 앞으로 꺼내서 얘기하지 말라고. 제가 계속 화내니까 내가 사라지면 되냐고. 너 나랑 사는게 불편하냐고. 새벽늦은시각이라 거기서 대화 끝냈는데 그뒤로 저는 집에갔는데 새아버지가 핸드폰 던지고 집나갔다가 얼마안되서 다시 들어왔데요. 다음날 다시 가서 제가 새아버지랑 둘이 다시 말을 했는데 (그래도 믿고 싶은 부분이 있었어요.제가 죽어갈때 입원비랑 다 내주셔서 살려주셨거든요) 그 분말씀이 제가 말해서 엄마랑 싸운거라고.그렇게 불편했으면 다시 자기한테 말해줬어야지 이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제가 말해서 자기가 이상한 인간이 되었다고.저의 새로운 면을 알았으니 니가 무서워서 앞으로 그런일은 다신 없을거라고.어린여자애한테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 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것 같냐고. 니가 예뻐서 깨물어주고 싶어서 내가 잊어버리고 한거지 그게 이럴 정도의 일이냐구요. 앞으로 불편하면 자기 피해서 다니라고. 이번 일로 자신이 엄청 상처받았다구요. 저보고 입이 싸다고 그걸 엄마한테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한테 사전통보를 하던지 다시 싫다고 말하던지 했어야했다고요. 그러면서 너 가고 화나서 나갔는데 갈곳이 없어서도 맞지만 엄마가 걱정되서 다시 들어왔다고.너는 화내면서 가서 신경안쓰였는데 엄마는 걱정되서 들어왔다고 하면서 대화를 끝냈어요. 집에와서 앉아있는데 서럽더라구요. 앉아있는데 옳다고 생각했던 제 기준들이 엉망진창이 된것 같았어요. 제가 사과받아야하는거 아닌가요. 나름 심리책도 많이 읽었는데도 뭐가 사실인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배려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제가 엄마하고 사이가 좋아서 끝까지 숨길 생각도 없었어요. 새아버지가 더이상 안하시면 나중에 말씀드릴 생각 이었거든요.근데 말이 통하지도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이되서 엄마에게 말한건데 주변에 친구나 만나는 사람이 없은지 오래되서 뭐가 사실인지 물어볼곳도 없습니다. 마치 제가 큰실수,큰잘못을 해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해요.저는 경험이 없고 집에만 있으니까 그래서 잘못을 했다는 뉘앙스에요. 제 느낌으론 되려 화내고 저한테 책임을 전가하는것 같은데 (죄책감을 느끼게해서) 그 방법들이 제가 취약하게 여길만한 직업,경험,남자,나이 같은거라 휘둘리지 않으려고 생각해도 이게 휘둘려진건지 사실인건지 구분이 잘 안됩니다. ㅡ새아버지는 저희랑 헤어지면 갈곳이 없어요. 저희 엄마 눈치를 많이 살핀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느닷없이 가족이라고 같이 산다고 무턱대고 들어와서 살았고 제가 자식같다는 말을 계속해서 그렇게 믿었는데, 이렇게 되니 저에게 보지말자고 말하는게 엄청 쉽더군요. 엄마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엄청신경쓰면서 저한테 엄마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게 제 탓이라고 했어요. 제가 부부관계를 모르고, 남자도 잘 몰라서 할말 못할말 구분없이 한탓이라구요. 제가 나름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이젠 모르겠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일인가요? 제가 성추행을 당한건가요? 저한테는 3살차이나는 여동생도 있어요. (종종 계속 너는 남자를 잘 몰라서 큰일이야.순진해서 큰일이야.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이 무시하는 말이었나 싶어요.남자를 어떻게 조심해야하는지는 말해주지 않구요.야한 농담이나 친구분들이 보내준 옆집여자가 옷을 벗었을때.같은 카톡 동영상을 볼래냐고 물으면서 일단 틀어요.그럼 이상한 자세로 속옷만 입은 여자가 나옵니다.이런걸 농담처럼 하니까 화를 낼 수도 없고.평소에도 제가 너무 예민하다고 말하거든요.보기 싫다고 하면 ㅇㅇ은 너무 순진해.큰일이야...이렇게 말합니다.이게 정상인건지...)
행복은 *** 오다가 뒤졌나
나 미래에서 왔는데 다들 여기적힌 꿈 이루고 완전 행복하게 잘살고 있더라 조금만 더 힘내보자
여기서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나 관심 받고 싶어 하트 좀 많이 눌러줘
하루하루 사는게 아니라 버티는거 같다
그냥 터치 한번의 하트가 나에게는 '맞아요, 그럼요, 저도그렇게 생각해요! 힘내요'로 번역 돼서 들린다
이곳에 힘들다고 글을쓰는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내일의 힘듦을 이겨내보기위한 당신의 아름다운 발버둥이에요.
내가 아파한만큼 너도 아파했으면 좋겠어
오늘은 내 생일이다. 주민등록번호가 그렇다고 하니 오늘이 맞겠지. 내 나이 이제 33살. 나는 다음달에 아이를 낳는다. 남편에게도 다 말하지 못한 내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 태어나보니 이 집구석은 이미 미쳐돌아가고 있었다. 아비는 도박에 알콜중독. 어미는 노래방 도우미였는데 내가 초경 시작하고부터 남자후리는 법을 배워야한답시고 나를 데리고 술집에 가려고 했다. 어미를 피해 집에 들어가면 아비가 술상을 뒤집어 엎고 나를 때리곤 했다. 나는 일찌감치 사랑받는 것을 포기했다. 애들은 나를 거지라고 불렀다. 거지가 맞았다. 나는 어미아비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그들은 내 존재를 거의 잊어버려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나는 알아서 학교에서 해주는 지원을 모조리 찾아보았고 선생님들께 언제나 불쌍한 티를 냈다. 내 양육자는 거의 학년별 담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쌍한 내가 반항하거나 대거리를 하는 것을 못견뎌 했다. 자신이 주는 호의에 굽신거리는 것을 기대했고 그렇게 해줬다. 그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언제나 황송하다는 자세를 취했고 그들의 동정심과 약간의 자부심을 자극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가끔 새 참고서나 교복따위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빌붙어 그렇게 살았다. 내 속에는 각오가 있었다. 언젠가 이 모든 멸시를 안주삼아 고급 와인을 마셔주겠다. 언젠가 저 ***같은 부모에게 제가 버린 딸자식이 얼마나 보석같은 존재였는지 알려주겠다.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하루에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다. 학급 친구가 버린 고물 pmp에 이비에스 강의를 다운받고 참고서 역시 그들이 쓰다 버린 것을 주워썼다. 선심쓰듯 나에게 버린 학용품도 아끼고 아껴서 썼다. 이면지를 모야 호치키스로 찝어서 시험과목을 정리했다. 전교 1등 거지. 그게 나였다. 고2때 나를 기억해낸 어미가 학교에 들이닥쳤다. 싸구려 옷을 입은 짙은 화장의 여자는 나를 자퇴시켜야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아마 그때의 내가 전국모의고사에서 1000등 안에 들지 않았다면 정말 자퇴를 하고 말았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불쌍하고 순종적이지만 공부 하나는 기똥차게 잘하는 나에게 훌륭한 방패막이 돼주었다. 아이들이 뒤에서 나를 조롱하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술집여자 딸인 것도 사실이고 어미가 이 지역 최고의 싸구려라는 것도 사실이라 화도 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아비가 학교에 들이닥쳐 선생들을 때리지만 않게 해달라고 하늘에다 빌었다. 이번에 신발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울음을 터트렸었다. 나는 여선생님들께 생리대를 구걸했고 하나를 최대한 오래쓰기 위해 휴지를 뭉쳐 아래에다 끼워넣곤 했다. 그러면 여린 살은 다 물러서 몹시 가렵고 따가웠다. 고2, 수학여행을 다녀오자 집이 사라졌다. 어미아비도 같이 사라졌다. 애초에 기대도 없는 집이었고 차라리 고아가 낫겠다 싶다고 느끼게 했던 곳이었는데...막상 그들이 정말 나를 버렸다는 것을 깨닫자 그렇게 눈물이 흘렀다. 내 짐이 쓰레기처럼 문 앞에 뒹굴고 있었다. 가방 안에 있던 10만원은 누가 준 것일까 궁금했지만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고 이미 집운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학교에서 잤다. 여교사 휴게실이 내 방이 되었다. 시설로 가기엔 나이가 애매했고 학교와 가까운 시설도 없었기 때문에. 학교의 모두가 내 사정을 알게됐다. 누군가는 차라리 잘됐다고 했다. 나는 읍사무소에 가서 내 사정을 말하고 행정절차를 밟는 동안 온동네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김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이지 불쌍한 애였다.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봤자 객관적으로 나는 불쌍한 년이 맞았다. 고3이 되었고. 나는 학교 이사장과 동문회와 선생님들의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서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함을 알았다. 공부는 나에게 생계였다. 여교사 휴게실에서 사는, 선생들을 묘하게 불편하게 하는 존재인 내가 공부마저 못하면 어떤 취급을 당할지는 안봐도 뻔했다. 코피가 터지고 몸은 말라갔지만 펜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와중에도 나는 떨어진 펜하나 함부로 주워쓰지 않았다. 다른 애들이 펜을 주워쓰면 줍는 것이 되겠으나 내가 그러면 훔친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래서 나는 언제나 비굴해야했고 웃어야했다. 호의를 베푸시는 분들의 기분을 맞춰야 했다. 그렇게 살았다. 성인이 되면 무언가 바뀔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나는 두 명의 싸구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답지 않게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수능점수는 시골학교 주제에 역사만 긴 우리학교에서 최고점이었다. 8년 만에 서울대 합격이었다. 그러나 막막했다. 나는 거지였기에. 계속 여교사 휴게실에서 살 수는 없었고 서울로 가야했다. 서울 고시원 월세며 등록금까지...해결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동안 내가 비굴하게 굴었던 것이 이때 빛을 발했다. 이사장은 지역신문에 얼굴을 파는 대신 장학금을 주었다. 동문회 역시. 선생님들도 그 신문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면 내 이름이 나올 거다. 나는 당장 코딱지만한 반지하 자취방을 얻을 수 있었고 등록금도 낼 수 있었다. 선생님의 조카를 소개받아 과외를 시작했다. 그 애는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공부는 열심히 했다. 남는 시간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한 달 동안 일해서 번 돈은 내 생에 가장 큰 돈이었다. 나는 그걸로 옷을 샀다. 그 옷을 예쁘게 걸어두고 엉엉 울었었다. 내 인생 최초의 새 옷이었다. 학교생활도 제법 잘 했다. 나는 상대방 기분에 맞추는 법을 잘 알았고 나에게 많이 베풀 것 같은 사람들에게 적당히 살갑게 굴었다. 이제 돈도 버는 마당에 구걸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 더러운 가정사는 묻어두었다. 나는 비로소 평범해졌다. 더이상 나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나 말고도 코딱지만한 자취방에 사는 아이들은 많았고 알바비로 월세를 내는 애들도 흔치는 않지만 있었다. 유난히 부잣집 애들도 많고 가난한 애들도 많았다. 과외는 입소문이 나서 그룹과외를 시작했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더이상 생리대 대신에 휴지를 끼지 않았고 버려진 펜을 주울까 말까 고민하지도 않았다. 계절마다 한 벌은 새옷을 샀다. 취업은 힘들었다. 과외를 빼면 당장 생계가 어려우니 취업준비할 기회가 나질 않았다. 대학간판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과외보다 페이가 적었다. 나는 취업을 포기하고 학원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규모의 입시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 제법 비싼 과외를 했다. 돈이 좀 모이면 그걸 가지고 행정고시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과외를 해주는 녀석의 형을 만났다. 나는 사실 그 형제가 못마땅했었다. 부모를 잘 만나 좋은 환경에서 사랑받고 자란 티가나는 그들은 내 열등감을 자극시켰다. 나는 내심 그들을 세상모르는 철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겉으론 참한 아가씨 같은 거죽을 뒤집어쓰고 속으론 세상 모든 평범한 이들을 고생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폄하하는 이중적인 여자였다. 어쨌든 그가 지금 내 남편이다. 내 겉가죽이 마음에 든 것인지 호감을 표하는 그를 나는 어찌 대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26살 먹도록 나는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남자와 길게 대화한 건 팀플이 다였기 때문에. 사실 남자란 존재를 다 내 아비처럼 여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냄새나고 추악하고 폭력적인. 어미라고 다를 바는 없었으나 그녀는 내가 힘으로 이길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향기가 났고 내 눈을 바라보곤 웃었으며 솜털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나는 그가 대체 나를 왜 좋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의심부터 생겼다. 몇 번 커피를 마시고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어떤 하자도 발견하지 못해서 더 그랬다. 그래서 그를 피하고 불편하다는 티를 내니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동생이 원하던 대학에 붙고 나와 그는 연이 끊어진 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아쉬웠나보다. 그를 다시 만난 건 그 제자의 연락 때문이었다. 시간이 제법 흘러 군대에 있다는 녀석이 왜 스쳐지나간 과외선생에게까지 연락을 하는지 몰랐으나 휴가나온 김에 잠깐 보면 안되냐는 말에 딱 끊기가 애매했다. 실은 그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예감대로 그 자리에는 좀 더 성숙해진 그가 있었다. 그의 동생, 그러니까 도련님은 형이 답답해서 나를 불렀다고 했다. 저 나이먹고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을 짝사랑 하는 게 말이나 되냐며 그를 나무랐다. 얼결에 번호를 교환했다. 나는 도저히 내 의문을 참을 수가 없어 내가 왜 좋냐고 물었다. 그가 수줍게 웃었다. 살짝 검은 피부에 짙은 눈썹 단단한 턱을 가진, 절대 꽃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가 참으로 단정하게 웃었다. 아직도 내 기억에 콱 박혀있는 그 모습은 나와 그가 연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책임감이 있고 다정한 남자였다. 아버지와 정반대인 그와 만난 지 2년이 지나고 나는 내 가족사를 털어놨다. 그렇게 떨어본 게 얼마만인지...나는 흠결이나 다름없는 내 과거를 감추고 싶기도했고 털어놓고 싶기도 했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 고생했다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그와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프로포즈를 받았다. 시부모님께는 그저 사고로 양친이 돌아가셔서 어렵게 자랐다고 했다. 내가 괜히 시가에 주눅드는 게 걱정이라며 그가 미리 말해 놓았다. 시부모님은 그의 부모님답게 참으로 다정하셔서 그런 상황에서도 잘 컸다고 기특해하셨다. 결혼준비를 하면서...나는 내 부모에 대해 궁금해졌다.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떼어 오라던 가족관계증명서를 그때까지 들고 있었던 미련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나는 흥신소에 그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주민등록번호가 있으니 연락은 금방왔다. 나를 버리고 어떻게 사나 했더니 여전했다. 막장인생. 저열한 쾌감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멍청한 생각인 건 알지만 멀리서라도 보고싶었다. 아니 비웃어주고 싶었던 걸까? 어미는 쉰이 넘어서도 술집에 나갔다. 시골도 이런 시골이 없었다. 그녀는 시골 노인네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는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그때 내 가방에 10만원을 당신이 주었느냐고 묻고싶었다. 기억보다 늙고 추레해진 그녀에게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참았다. 괜히 혹을 붙일까 겁이 났다. 그러나 한참을 그 골목에서 서성였었다. 아비는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도박빚에 팔려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채업자가 나까지 찾아오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집에 돌아오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찝찔하고 울적하고 공허한 느낌...차라리 다 죽어버리지, 아니면 노인네 첩자리라도 들어가지. 생각이 마구 뒤엉켰었다. 다시 그 술집에 찾아갔다. 여전히 멀리서 바라만 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나는 지레 놀라서 황급히 차를 끌고 도망쳤다. 후회했다. 나를 알아봤을까. 결혼식장에 와서 난장을 피우지는 않을까. 긴장 속에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계획대로 시험을 쳤고 합격했다. 임용된 지 1년이 좀 넘었을 때 임신을 했다.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어미가 생각났다. 나를 가졌을 때, 지금의 나처럼 기뻤을지...아니면 슬펐을지 궁금하다. 당신도 나처럼 기쁘다가도 너무 힘들어 후회스럽기도 했을까. 뱃속의 생명이 신비롭고 벅차오르다가도 무거운 책임감에 눈물이 났을까. 다시 찾아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녀 같은 어미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나는 다음 달에 진실로 엄마가 된다. 왕자님이니 제 아빠같이만 컸으면 좋겠다. 나는 휴직계를 내고 태교에 집중하면서 온종일 아이의 미래를 상상한다. 그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내 어미는 나를 가졌을 때....어떤 미래를 꿈꿨을까...아기때 내가 죽지 않은 걸 보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텐데. 숨쉬기도 힘들만큼 부푼 배를 보고 있으면 여러 상념이 떠돈다. 이렇게나 소중한 아이를 버리기까지 당신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속도 없이 이해하게 된다. 여유로움에서 오는 관용인 걸까. 그저 내가 속이 없는 걸까. 이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내가 누리는 행복을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누릴 수 없을테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면서 많이 울었고 또 나도 모르던 앙금을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 곧 엄마가 돼서 그런지 유독 그 존재가 생각나네요. 제 마음 속에 숨겨진 어둠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제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잘 할 수 있겠지요.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