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금당했었습니 - 마인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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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mn
7년 전
나는 감금당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5학년까지 약 1년간이었죠. 시작은 유치원 말 부터였어요. 엄마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죠. 뭐가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상해져가는 엄마로 인해 아버지가 폭력적이 된 것인지, 혹은 아버지가 그 영향을 끼친 것인지. 엄마는 당시 조현병 및 피해망상 초기증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손이 굳기 시작하더니, 구부러들어 마치 닭발과도 같은 꼴이 되었지요. 그러면서 저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게 했고, 식사시간마다 음식을 과하게 먹게 만들게 했죠.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매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라는 단어를 말했다고 때린다던가, 밥을 냉면그릇 한 가득 퍼놓고서는 다 먹지 않았다고 때리기 시작했죠. 증상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한여름에 우산을 테이프로 손에 묶은 채 학교에 찾아와 운동장 한복판에 쪼그려 앉아 절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혹은 수업시간에 교실까지 들어와 절 데려가기도 했죠. 그 과정에선 몇 명의 선생님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소리를 지르고 울거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질문이든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대답하는 등의..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증상은 한층 더 심해졌죠. 저는 1년간 집에 갇혀있었습니다. 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학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로 말과 행동을 통제당했죠. 한여름에 겨울용 솜이불을 두 겹씩 덮은 채 14시간 넘게 자거나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숨소리를 내거나 뒤척이면, 곧장 매질이 뒤따랐죠. 음식을 목구멍까지 집어넣고서도(비유가 아니라 말그대로), 더 이상 못 먹는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엄마와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습니다. 문맥과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했죠. 특히 피해망상이 심했습니다. 어딜 가든 남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해코지를 할 거라는 망상에 시달렸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본인도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데? 라고 물어보면 그냥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죠. 전화, 친구, TV등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사용해서는 안됐습니다. 바로 매타작이 날아왔죠. 무슨 이유가 있던지 간에 매일 맞아야 했습니다. 집에 갇혀있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몰래 담을 넘어 도망치거나 놀러갔다면, 다음날 죽도록 맞았습니다. 허벅지 전부가 멍이 들어 앉지도 못 할 정도로요. 그 당시 명절 때 오늘은 한 대도 안 맞았다며 기뻐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물론 그날 저녁에도 맞았지만요.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은 저에게 견딜 수 없는 공포였거든요. 아버지의 감정은 너무나 격했습니다. 말이 기독교 신자였지 싸움이 나면 개차반이 따로 없었죠. 이해는 합니다. 그 분노는 지금도 제 안에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미움과, 참았던 짜증, 자식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대한 분노가 어찌 그리 나긋나긋하겠습니까. 하지만 어렸던 저에겐 세상이 끝나는 것과도 같은 공포였지요. 집안 집기들이 부서지고 주먹질과 몽둥이질,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 나를 붙잡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에게서 나를 떼어내려 다리든 어디든 잡고 끌어당기는 아버지. 아마 인간의 몰골이 아니었을 겁니다. 웃음이 나오네요. 하지만 아버지는 날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몰랐겠지요. 일 년간 제가 급격히 살이 찌고,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어도, 한여름에도 입어야 했던 겨울 옷에 가려져 알 수 없었겠지요. 그런 저에게 유일한 오락거리는 매일 아버지가 빌려다 줬던 세권의 책들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최대한 엄마의 정신병원 입원을 보류하고 싶었던 듯 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자신의 사랑으로 참고 견디며 희생하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겠지요. 하지만 그 사이에 망가져가는 저를 방치했습니다. 뭐...몰랐으니까요. 저녁식사를 끝내고 과일을 깎아 먹을 때, 웃으면서 장난으로 다리 전부에 멍이들어 앉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나, 그 즉시 집안이 난장판으로 변하는 집안이 비정상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몰랐던 겁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입원용 차량을 호출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저를 놀다오라고 했죠. 대문으로 들어오는 의사의 뒷짐 진 손에 두터운 밧줄 묶음이 쥐어져 있던 게 아직도 선명하네요. 100미터쯤 떨어진 아파트의 7층에서는 엄마가 소리 지르는 것이 아주 잘 들렸습니다. 우리 집 주변에서도 아마 더 잘 들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집은 조용해졌습니다. 저 역시 얻어맞는 일은 없어졌죠. 선생님도 이런 집의 사정을 아시고 출석을 인정해주셔서 유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그런 생활을 한 아이가 얼마나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겠습니까. 선생들 사이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 이상하고 가까이 하기 싫은 아이였죠. 못생겼고, 제대로 씻지 못해 냄새나고, 한여름에도 긴팔에 긴 바지, 모자를 쓰고 다녔으니까요. 감금당한 1년은 저에게 몇가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성격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얻어맞으면서도 살겠다는 오기는 악착같았으니까요. 다만 서툴러진 대인관계와, 비명을 지르느라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를 내는 목, 살쪄버린 몸이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지독한 기독교 신자였죠. 저와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었죠. 일방적인 설교일 뿐, 제가 원하는 소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뭐,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당신은 그러기 전에 제가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게 먼저였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저 과거에 본인이 거칠게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며, 다 그렇게 살았다, 더 심했다는 말이나 했죠. 항상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그러면서 제가 어떤 친구관계나 누구에게 의지 하지 말고, 그런 무의미한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하면서 지내야 했을까요? 성경책이나 읽을까요? 어린아이들이 대화 주제로 가지는 대부분의 것은 아버지가 세상의 것이라 멀리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자식의 사회성에 지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거죠. 이해는 합니다. 늦은 나이에 구원을 받았다고 믿으며, 과거의 방탕한 자신과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서 저를 지옥으로 밀어넣었죠. 당신이 말하는 구원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손을 가지고 자식을 나락으로 밀어 넣고 하나님의 손으로 꺼내게 하는 건지 궁금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저는 몸이 자라서 더 이상 맞지 않았고, 엄마는 몇 번 더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습니다. 정신병원의 냄새와 풍경도 나름 추억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네요.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성적은 나름 괜찮았고, 저는 국립 지방대로 잔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우리 모두에게 미움과 연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병이 걸린 사람을 탓할 수도, 그런 아내를 맞이한 사람을 탓할 수도, 그리고 그들로부터 괴로움을 받은 저를 탓할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저의 고통을 외면한 아버지에게, 나의 아픔을 이해해달라고는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주제로 몇 번 대화도 시도해 보았죠. 아버지는 외면했습니다. 표정과 목소리가 일그러지고,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분노만이 돌아왔죠. 몇 번의 반복 이후로, 저는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받은 고통에 대해,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려는 사과만 반복할 뿐, 정작 내가 어떤 시간 안에 있었는 진 관심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아버지를 탓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그릇이 그뿐이었음을 이해해야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름대로 헌신적인 아버지였습니다. 얼마 전에 바꾸었던 휴대폰에는 아버지의 문자가 빼곡하게 저장되어 있습니다. 4년간 1000통 정도 되려나. 참 꾸준하죠. 정작 저는 손에 꼽을 정도의 답장을 보냈군요. 그런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저는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화통화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이고, 제가 먼저 거는 일도 거의 없죠. 집에 내려가는 일은 연례행사며, 특별한 이유 없이는 가지도 않습니다. 사실상 부모와 저의 (일방적인)관계를 유지해 주던 것은 대학시절까지, 미약한 금전적인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로도, 어떤 내면적인 소통도 없었지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제 고통을 듣기를 거부한 순간부터, 그건 애초에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압니다. 누구도 저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음을 알죠. 나는 그들을 이해했지만, 그들에게 상처받은 나를 이해해 준 사람은 누구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저의 삶을 보다 낫게,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자존감 높고 활발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죠. 저 또한 저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아직도 방어적인 성격이 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하지만 이런 저에게도 가족에 대한 의구심은 늘 남아있습니다. 용서는 애저녁에 글러먹었고, 제가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란 것도 잘 압니다.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제가 해결하고 싶은 것은, 제가 한번씩 사로잡히는 이 격렬한 분노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냐는 겁니다. 그 시절에 당해온 부당함과, 그로 인해 비롯된 저의 부정적인 것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무력하게 당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나 자신과 그 감정들을 생각하면, 견딜 만 합니다. 견딜만 만 하죠. 저와 좀 친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웬만하면 알고 있습니다. 깊이는 좀 다르지만. 그렇게 반복한 덕분에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해졌지만, 아직 그렇게 한 번씩 치밀어 오르는 화는 쉽게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네요. 그런 감정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저의 진로, 결혼, 장래 등 현실적인 문제에도 깊게 연관되어 있으니, 해결하기가 쉽지 않네요. 빚이 없다 뿐이지 기초생활 수급자..아버지는 사기로 전재산을 날렸고, 미래를 바라볼수록 저는 너무나 암담합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저는 고작 27살이고, 20년을 사로잡았던 기억들 중에 행복은 별로 찾을 수 없으며, 제 인생을 살기 시작한 7년으로 이겨내기에는 미래와 현실, 과거 모두가 너무나, 어렵네요. 타인들의 출발선에 이제야 도달한 것 같은데, 더 먼 길은 어떻게 가야하는지. 그조차도 살아있는 지금의 특권이라 믿으며 이겨내고 싶지만, 그저 눈을 돌리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합니다. 최대한 지금만 바라보고 나아가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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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 님의 전문답변
7년 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조현병, 일명 정신분열증으로 망상과 환각, 폭력성이 조절이 되지 않았던 어머니, 그 옆에서 현실을 잘 인정하지 못하고 종교적인 힘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아버지, 아무 힘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렇지만 환자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철저히 미워할 수도 없었던 님의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져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최근 조현병 환자분들의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묻지마 살인이다, 여성 혐오다, 위험하다 등등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얼마전 정신보건법 개정안에서 전문가들이나 보호자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보호 입원의 문턱을 높여 놓고, 다시 조현병에 한해서는 보호 입원이 쉽게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조현병 환자들에 대해서 어디에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지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등... 언론이 뜨거워지면 원칙없이 대처가 세워지고 달라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숨만 나옵니다. 조현병은 사실 환청과 망상, 폭력성이 두드러질 수 있지만 정상인에 비해서 실제 범죄율은 더 낮습니다. 다만 치료를 받지 않고 관리가 안되는 상태에서 양성증상이 두드러질 때 일반인들이 보기에 이해가 잘 안되기 때문에 두려울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치료를 받고 환청, 망상, 충동성이 잘 조절되는 모습을 보면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님의 경우, 무기력한 어린 나이에, 병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증상이 전혀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어머니로부터 너무 많은 피해를 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그런 어머니를 병적인 부분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기로 마음을 굳히신 것 같지만, 어머니의 폭력 앞에서 자신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냥 미워하고 원망하기에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혹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원망하고 부정하는 것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무턱대고 마음 속에서 밀쳐내지도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서 울분, 억울함, 분노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겠지요. ‘내려놓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은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고무시키자는 취지하에 ‘던져버리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 과거의 일들, 상황들, 사람들에 대한 내 마음을 내려놓거나 혹은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님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마음들이 현재 본인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과거는 과거대로 두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름의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지금의 자리에 서 계실 수 있었겠지요.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과거로부터 지금으로 가져오도록 하세요. 나도 모르는 사이게 다시 예전의 어린시절에 느껴야만 했던 무기력한 감정, 분노의 감정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의식을 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편 내 무의식이 자꾸만 과거의 힘들었던, 무기력했던 나에게 다시 쏠리고 있다면, 이는 현재 스트레스나 갈등 상황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봐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게 되는데 현재 뭔가 잘 안 풀리고 힘들 경우 이를 과거의 특정 경험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나 비난할 대상이 명확하다면 그편이 나를 보호하기가 좋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마음에 얽매여봤자 나는 지금의 문제를 더욱더 해결하기 어려워집니다. 무기력했던 자신과 이미 달라진 지금의 나를 자꾸 연관짓지 마세요. 대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내가 마음 속에 남아있다면 그동안 정말 애썼다고, 얼마나 무서웠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힘껏 안아주세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태어났을 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가족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뭔가를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제발로 걸어나갈 수 있는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다하는 존재입니다. 본인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세요. 누구누구의 자식이 아닌 본인의 이름으로 부모를 심리적 애착으로부터 떨어뜨리고 더 이상 마음의 영향을 받지 않으시기를,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시길 마인드카페에서 응원합니다. #조현병 #정신분열증 #독립 #내려놓기 #던져버리기 #부모 #자식 #분노 #원망 #무기력
likewise
7년 전
섵불리 어떤 말을 해야할지 주저스럽습니다만, 다른 모든 필요한 말들은 현명하고 상냥하신 분들께서 하셨으니까요.. 저는 많이 미워하고 솔직하게 화를 낸 시절이있었어요. 인식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긴 해도 감정이 삭아지지가 않아서 혼자서 많이 미워하고 원망도하고 그런 제 모습을 원망하고 자책한 시기도 있었어요. 그저 흐르는대로 제 마음을 저에게라도 솔직해지니 내려놓고 비워지고 조금은 화가 삭히는 것이 약간은 되더군요.. 악착같이 살아남아주셔서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으실거구 스스로에게도 그럴거라 믿습니다. 힘겨운 시간에 비하면 지금 일 아무것도 아니지 해보자 하며 다독이고 스스로 견디셨을 시간에 제가 마저 응원을 보냅니다. 작지만 소소한 평안한 하루가 오늘도 님에게 다가가길 바래요. 잘 버티신 것 정말 대단하세요.
alsmn (글쓴이)
7년 전
@delrian0124 진지한 위로 감사드립니다 음...사실 제 입장에서는 그런 과거의 문제들이 가끔 엄습해 오는것이 크게 괴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상 속의 작은 불편함이고, 이를 해소할 만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조언을 바라는 것이지요 오기가 세고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편이라 삶과 그 과거를 격리하는 부분은 그다지 걱정하진 않습니다 아주 가끔 고민에 빠지는 정도지요 다만 앞으로 겪어야 할 생애주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방법론,그리고 그에 따른 제 자신의 비정함을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라 생각해요
alsmn (글쓴이)
7년 전
사실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행복해지겠다는 일념 하나만 가지고 자신을 지켜왔기에,오히려 지나친 방어기제가 좀 불편할지도 모르겠네요
ksyeon030
7년 전
강한 분이시네요. 존경합니다 정말.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 있으셨는지..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하게 해주신 점 감사해요. 저는 이제 맞서게 될 현실적인 애로사항들을 유도리있게! 당당하게! 이겨내고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실거라고 생각해요. (말이 생각이지, 확신합니다. 정말이지 너무 훌륭하게 잘 버텨주셨어요.) 항상 씩씩해주세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delrian0124
7년 전
저는 당신이 쓴 글을 정말 최선을 다해 읽었습니다. 대충 읽지도, 뛰어넘겨가며 읽지도 않고 진지하게 읽었어요. 이 수많은 하루하루를 견뎌내느라 수고하셨어요. 그 과거가 어디로 가지않고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니며 다시 떠올려질 때, 그 분노가 얼마나 견디기 힘드시겠어요. 증오심과 연민, 용서할 수 없는 마음과 용서하려는 마음까지 단 하나도 편히 넘어갈 수 없는 감정들에 시달리고 지치고..괜찮다가도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나에게 들러붙으면 정말 한줌의 모래로 사라지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게 삶이고,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이죠. 사실 타인들의 출발선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요. 특별한 삶을 지닌 자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대부분 사람들을 출발선조차 없어요. 나이를 먹어가는 것 외에는 눈에 특출나게 다를 것도 없구요. 그저 살아낸만큼 받는 겁니다. 지금처럼. 스스로 당신을 지탱한 것 처럼 살아가요. 이런 아픔을 가졌는데도 당신은 자살하지도 않았어요. 살아가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이게 사실 되게 대단한 일이에요. 출발선에 슨겁니다. 자신의 삶을 빛냈던 사람들이 오랜시간 걸쳐서 슨 출발선이에요. 깊은 아픔을 끌어안고 견딘 당신은 드디어 출발선에 섰어요. 한발짝 내밀어보세요.
sosjyhelpyj
7년 전
저두요. 겪은 적은 없지만 공감하고, 또 마음 깊숙히 잘되길 빌면서 꼼꼼히 읽었어요. 또, 글쓴이님 처럼 견디고 싶어요. 존경스럽습니다..
zaza
7년 전
학대의 흔적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남아이습니다. 그러다가 갈등상황이나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면 그 분노가 분출되죠. 분노조절 증상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일을 겪으면 멀쩡한게 더 비정상일겁니다. 그렇지만 글쓰신분 께서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능력을 잃지 않으시고 훌륭하게 성장하신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으시다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님마저 자신의 과거를 무시한다면 어디에서도 상처를 치유받을 수 없어요.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당시 힘들고 두려웠을지 보듬고 위로해 주세요. 존 브래드쇼의 가족이나 내면아이 치유같은 책 추천해 드립니다. 자가치유가 충분히 가능하실 분 같습니다.
fhkfem31
7년 전
와 글 진짜 잘쓰신다
fhkfem31
7년 전
와 상담사님 말 진짜 잘하신다
brownsunset
7년 전
사실 길어서 전부 읽진 못했지만 많이 힘드셨겠네요 저도 일일이 말하긴 그렇지만 어릴적에 아버지의 학대속에 자라서 지금까지도 늘 소심하고 주눅든 채로 살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좋게 바뀌진 않겠지만 매사에 작은 거라도 감사하면서 살면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