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오빠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려서부터 오빠는 소극적인 편이었고, 공부나 운동 면에서는 별로 성적이 좋지 않았고 혼자 책 읽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걸 좋아했어요. 3살 적은 저는 그에 비하면 욕심도 많았고, 공부나 대인관계 면에서 오빠보다 나았고요. 그 때문인건지 유년기에는 서로 아주 친했지만, 오빠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멀어진다고 느꼈어요.
제가 초등학생이고 오빠가 중학생일 때 학원에 2시까지 가야하는데 1시 50분까지 밥도 안먹고 게임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제 핸드폰으로는 엄마한테 오빠가 2시까지 학원에 가야한다는 문자가 왔고, 저는 오빠옆에서 밥그릇을 들고 입에 넣어주며 가방을 챙겨서 학원을 보냈어요.. 그때는 제가 누나라고 생각하면서 오빠를 챙기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쩌면 오빠를 무시하기도 했던 거 같기도 하고, 동생인데 누나 역할을 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뿌듯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그때는 오빠를 좋아했던 거 같아요.
오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업부담이 심해지고 사춘기가 겹치면서 엄마한테 짜증내고 화내고 반항하는 횟수가 늘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부모님에 대한 애정욕구, 인정욕구도 많고 특히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강한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 저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고, 오빠는 그런 생색은 다 내면서도 끝까지 열심히는 안했고, 중간에 미술로 진로를 바꾸더니 한 번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가긴 했지만 본인이나 부모님이나 별로 만족할만한 결과는 아니었어요. 예체능이다 보니 우리 집 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지출이 수반됐고, 저희 엄마도 그 온갖 짜증을 견디고 매일 아침 재수학원 도시락을 싸시느라 많이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중학생일 때 비해 성적이 많이 떨어져 저도 굉장히 우울했고, 많이 예민해지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우울증이었던 거 같은데 그때는 몰랐어요. 제가 고3때, 3월 모의고사를 망쳤던 날 방에서 공부를 하는데 밖에서 너무 시끄럽게 게임하는 오빠때문에 화가 치밀어서 나가서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네가 공부하는데 자기가 왜 조용히 해야하냐며 싸웠고, 서로 나가라 싸우다 제가 '할 줄 아는건 게임밖에 없는 주제에' 라고 하며 방으로 왔더니 따라와서 뺨을 때리고 목을 조르고 부모님이 와서 말리자 저를 내팽개쳐 던지는데, 바닥에 있던 책선반에 부딪혀서 상체 앞면과 옆면 전체에 노랗고 파랗고 보라색의 멍이 크게 들어서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이때 오빠에 대한 감정은 두려움보다는 분노와 한심함이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성인이 되어서 오빠는 대학교가 너무 멀다며 자취를 시켜달라 했고, 따로 사는데도 인신공격 수준의 장문의 이메일을 먼저 보내와서 메일 주고받으며 싸운 적도 있고, 그렇네요. 이때 오빠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서 우울증에 걸렸었고 집으로 돌아와서 지금은 끊었지만 몇년동안 약도 먹고 그랬어요. 하필 그때는 저도 많이 예민하고 힘들 때였고요. 그때 저는 집에 부담이 가는 게 싫어서 학원도 다 끊고 혼자 인강으로 공부하면서 괜찮은 대학교를 갔는데, (저는 엄마가 돈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걸 많이 보고 느껴서 지금까지도 소비를 잘 못하거든요) 아는지 모르는지 알바도 안하고 쓸데없는 월세로 매달 축내는게 정말 보기 싫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가 중학생일 쯤에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지우개를 빌리러 와서 제가 학생이 그것도 없냐하며 빌려주니까 뒤에 한참 서있더라고요. 목을 조르려 하는 걸 참는 게 그림자로 보였어요. 좀 있다 핸드폰으로 한 번더 그딴 식으로 말하면 그때는 진짜 죽여버리겠다는 문자가 왔는데 그걸 보고 놀라서 많이 울었어요. 이때는 정말 상처주려는 의도가 없었거든요. 친구들끼리도 그 정도 장난은 많이 쳤었고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린 마음에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그때는 오빠를 좋아할 때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가 동생인 저한테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꼭 공부 뿐만이 아니라 아주 어렸을 때도 제가 부모님 앞에서 칭찬받기 위한 행동들을 하면 꼭 불편한 티를 내고 그랬어요. 커서 생각해보면 첫째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스트레스라고 머리로는 생각이 드는데요, 근데 전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만큼 오빠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껴졌거든요. 오빠가 나한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게 내가 은연 중에 내심 오빠를 무시해서 그랬나 싶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형제를 미워한다는 사실도 괴로웠고요.
그래도 인간은 다 자기 인생이 제일 불쌍한 거잖아요. 제가 보기에 오빠는 이런 사람이어도 오빠도 나름대로의 상처와 이유가 있을거고,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지만 타인이 느끼기에도 그 삶이 참 한심한데 본인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저는 그래도 꿈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고 비전도 있는데 오빠는 아니니까, 불쌍한 인간이다 생각하면 좀 낫더라고요.
성인이 되고 저도 점점 자라면서 오빠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나름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측은지심같은 것도 느꼈고요. 그러면서 좀 괜찮아졌다고 느꼈는데 아직도 오빠가 하는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생각하게 되고 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요. 이제는 예전처럼 제가 화를 내면 싸우게 될 거라는 걸 아니까 그럴때는 그냥 입을 닫고 절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데요. 그러다보면 그 감정이 혼자 있을 때 눈물로 나오기도 하고, 뭔가 문제가 있긴 있는데 그걸 자꾸 외면하고 방치하고 해결을 유보하는 느낌만 들면서 무기력함도 느끼고 억울함도 느껴져요. 이런 걸 부모님한테 얘기할 수는 없고, 친구들한테도 단편적인 수준에서만 털어놓을 수 밖에 없으니까 너무 답답하고요..
형제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똑같은 자식이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관계이고 뿌리가 같으니까, 같은 유년시절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이니까 사랑하고 싶어요. 싫어함의 반대가 사랑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오빠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좀 덜고 싶어요. 근데 아직도 그렇게 힘들게 간 대학은 결국 1년만에 자퇴하고 n년째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공무원 시험 준비 한다면서 몇개월째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지나가면 악취가 나서 숨을 참아야 하는, 엄마가 집 비우는동안 먹으라고 음식을 여러가지 해놔도 라면 끓일 냄비가 없으니까 음식 좀 해놓지 말라고 핀잔하는, 그러면서도 본인은 지금 상태에 너무 만족하고 고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저 사람이 너무 싫어요. 엄마한테 볼멘소리로 짜증내고 빈정거릴 때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하던 일에 집중이 안되고, 싫어하고 싶지 않은데 싫어서 더 힘들어요. 오빠가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어서 정당하게 미워할 수 없는 게 더 괴로운 것 같아요. 글이 쓰다보니 길어졌는데, 민망하게도 오빠에 대한 제 이야기는 다 하려면 이것도 부족할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집에서 하루종일 고시공부를 하는 상황이고, 오빠가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을 하기 때문에 365일을 좁은 집에서 24시간 내내 붙어있고 하다보니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다루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둘 중 독립을 한다면 제가 할 수 있을텐데 그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거고, 제가 나간다하더라도 집에 제가 없으면 엄마가 스트레스가 심해지실 것 같은(아닐 수도 있지만) 오지랖같은 생각도 벌써 들고요. 만약 제가 오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있다거나 하면 최대한 바꿔서 잘 지내보고 싶은데 어떤게 도움이 될까요..? 그치만 그렇다고 직접 터놓고 오빠와 대화하는 건 정말 원하지 않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