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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금당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5학년까지 약 1년간이었죠. 시작은 유치원 말 부터였어요. 엄마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죠. 뭐가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상해져가는 엄마로 인해 아버지가 폭력적이 된 것인지, 혹은 아버지가 그 영향을 끼친 것인지. 엄마는 당시 조현병 및 피해망상 초기증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손이 굳기 시작하더니, 구부러들어 마치 닭발과도 같은 꼴이 되었지요. 그러면서 저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게 했고, 식사시간마다 음식을 과하게 먹게 만들게 했죠.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매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라는 단어를 말했다고 때린다던가, 밥을 냉면그릇 한 가득 퍼놓고서는 다 먹지 않았다고 때리기 시작했죠. 증상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한여름에 우산을 테이프로 손에 묶은 채 학교에 찾아와 운동장 한복판에 쪼그려 앉아 절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혹은 수업시간에 교실까지 들어와 절 데려가기도 했죠. 그 과정에선 몇 명의 선생님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소리를 지르고 울거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질문이든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대답하는 등의..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증상은 한층 더 심해졌죠. 저는 1년간 집에 갇혀있었습니다. 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학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로 말과 행동을 통제당했죠. 한여름에 겨울용 솜이불을 두 겹씩 덮은 채 14시간 넘게 자거나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숨소리를 내거나 뒤척이면, 곧장 매질이 뒤따랐죠. 음식을 목구멍까지 집어넣고서도(비유가 아니라 말그대로), 더 이상 못 먹는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엄마와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습니다. 문맥과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했죠. 특히 피해망상이 심했습니다. 어딜 가든 남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해코지를 할 거라는 망상에 시달렸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본인도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데? 라고 물어보면 그냥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죠. 전화, 친구, TV등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사용해서는 안됐습니다. 바로 매타작이 날아왔죠. 무슨 이유가 있던지 간에 매일 맞아야 했습니다. 집에 갇혀있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몰래 담을 넘어 도망치거나 놀러갔다면, 다음날 죽도록 맞았습니다. 허벅지 전부가 멍이 들어 앉지도 못 할 정도로요. 그 당시 명절 때 오늘은 한 대도 안 맞았다며 기뻐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물론 그날 저녁에도 맞았지만요.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은 저에게 견딜 수 없는 공포였거든요. 아버지의 감정은 너무나 격했습니다. 말이 기독교 신자였지 싸움이 나면 개차반이 따로 없었죠. 이해는 합니다. 그 분노는 지금도 제 안에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미움과, 참았던 짜증, 자식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대한 분노가 어찌 그리 나긋나긋하겠습니까. 하지만 어렸던 저에겐 세상이 끝나는 것과도 같은 공포였지요. 집안 집기들이 부서지고 주먹질과 몽둥이질,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 나를 붙잡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에게서 나를 떼어내려 다리든 어디든 잡고 끌어당기는 아버지. 아마 인간의 몰골이 아니었을 겁니다. 웃음이 나오네요. 하지만 아버지는 날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몰랐겠지요. 일 년간 제가 급격히 살이 찌고,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어도, 한여름에도 입어야 했던 겨울 옷에 가려져 알 수 없었겠지요. 그런 저에게 유일한 오락거리는 매일 아버지가 빌려다 줬던 세권의 책들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최대한 엄마의 정신병원 입원을 보류하고 싶었던 듯 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자신의 사랑으로 참고 견디며 희생하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겠지요. 하지만 그 사이에 망가져가는 저를 방치했습니다. 뭐...몰랐으니까요. 저녁식사를 끝내고 과일을 깎아 먹을 때, 웃으면서 장난으로 다리 전부에 멍이들어 앉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나, 그 즉시 집안이 난장판으로 변하는 집안이 비정상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몰랐던 겁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입원용 차량을 호출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저를 놀다오라고 했죠. 대문으로 들어오는 의사의 뒷짐 진 손에 두터운 밧줄 묶음이 쥐어져 있던 게 아직도 선명하네요. 100미터쯤 떨어진 아파트의 7층에서는 엄마가 소리 지르는 것이 아주 잘 들렸습니다. 우리 집 주변에서도 아마 더 잘 들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집은 조용해졌습니다. 저 역시 얻어맞는 일은 없어졌죠. 선생님도 이런 집의 사정을 아시고 출석을 인정해주셔서 유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그런 생활을 한 아이가 얼마나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겠습니까. 선생들 사이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 이상하고 가까이 하기 싫은 아이였죠. 못생겼고, 제대로 씻지 못해 냄새나고, 한여름에도 긴팔에 긴 바지, 모자를 쓰고 다녔으니까요. 감금당한 1년은 저에게 몇가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성격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얻어맞으면서도 살겠다는 오기는 악착같았으니까요. 다만 서툴러진 대인관계와, 비명을 지르느라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를 내는 목, 살쪄버린 몸이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지독한 기독교 신자였죠. 저와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었죠. 일방적인 설교일 뿐, 제가 원하는 소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뭐,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당신은 그러기 전에 제가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게 먼저였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저 과거에 본인이 거칠게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며, 다 그렇게 살았다, 더 심했다는 말이나 했죠. 항상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그러면서 제가 어떤 친구관계나 누구에게 의지 하지 말고, 그런 무의미한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하면서 지내야 했을까요? 성경책이나 읽을까요? 어린아이들이 대화 주제로 가지는 대부분의 것은 아버지가 세상의 것이라 멀리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자식의 사회성에 지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거죠. 이해는 합니다. 늦은 나이에 구원을 받았다고 믿으며, 과거의 방탕한 자신과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서 저를 지옥으로 밀어넣었죠. 당신이 말하는 구원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손을 가지고 자식을 나락으로 밀어 넣고 하나님의 손으로 꺼내게 하는 건지 궁금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저는 몸이 자라서 더 이상 맞지 않았고, 엄마는 몇 번 더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습니다. 정신병원의 냄새와 풍경도 나름 추억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네요.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성적은 나름 괜찮았고, 저는 국립 지방대로 잔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우리 모두에게 미움과 연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병이 걸린 사람을 탓할 수도, 그런 아내를 맞이한 사람을 탓할 수도, 그리고 그들로부터 괴로움을 받은 저를 탓할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저의 고통을 외면한 아버지에게, 나의 아픔을 이해해달라고는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주제로 몇 번 대화도 시도해 보았죠. 아버지는 외면했습니다. 표정과 목소리가 일그러지고,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분노만이 돌아왔죠. 몇 번의 반복 이후로, 저는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받은 고통에 대해,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려는 사과만 반복할 뿐, 정작 내가 어떤 시간 안에 있었는 진 관심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아버지를 탓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그릇이 그뿐이었음을 이해해야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름대로 헌신적인 아버지였습니다. 얼마 전에 바꾸었던 휴대폰에는 아버지의 문자가 빼곡하게 저장되어 있습니다. 4년간 1000통 정도 되려나. 참 꾸준하죠. 정작 저는 손에 꼽을 정도의 답장을 보냈군요. 그런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저는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화통화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이고, 제가 먼저 거는 일도 거의 없죠. 집에 내려가는 일은 연례행사며, 특별한 이유 없이는 가지도 않습니다. 사실상 부모와 저의 (일방적인)관계를 유지해 주던 것은 대학시절까지, 미약한 금전적인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로도, 어떤 내면적인 소통도 없었지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제 고통을 듣기를 거부한 순간부터, 그건 애초에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압니다. 누구도 저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음을 알죠. 나는 그들을 이해했지만, 그들에게 상처받은 나를 이해해 준 사람은 누구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저의 삶을 보다 낫게,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자존감 높고 활발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죠. 저 또한 저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아직도 방어적인 성격이 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하지만 이런 저에게도 가족에 대한 의구심은 늘 남아있습니다. 용서는 애저녁에 글러먹었고, 제가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란 것도 잘 압니다.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제가 해결하고 싶은 것은, 제가 한번씩 사로잡히는 이 격렬한 분노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냐는 겁니다. 그 시절에 당해온 부당함과, 그로 인해 비롯된 저의 부정적인 것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무력하게 당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나 자신과 그 감정들을 생각하면, 견딜 만 합니다. 견딜만 만 하죠. 저와 좀 친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웬만하면 알고 있습니다. 깊이는 좀 다르지만. 그렇게 반복한 덕분에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해졌지만, 아직 그렇게 한 번씩 치밀어 오르는 화는 쉽게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네요. 그런 감정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저의 진로, 결혼, 장래 등 현실적인 문제에도 깊게 연관되어 있으니, 해결하기가 쉽지 않네요. 빚이 없다 뿐이지 기초생활 수급자..아버지는 사기로 전재산을 날렸고, 미래를 바라볼수록 저는 너무나 암담합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저는 고작 27살이고, 20년을 사로잡았던 기억들 중에 행복은 별로 찾을 수 없으며, 제 인생을 살기 시작한 7년으로 이겨내기에는 미래와 현실, 과거 모두가 너무나, 어렵네요. 타인들의 출발선에 이제야 도달한 것 같은데, 더 먼 길은 어떻게 가야하는지. 그조차도 살아있는 지금의 특권이라 믿으며 이겨내고 싶지만, 그저 눈을 돌리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합니다. 최대한 지금만 바라보고 나아가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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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관해 알수없는 죄책감에 가슴이 답답하고 구토감까지 느껴요.... 아버지는 안계시고 어머니는 알콜중독이고 여동생이 하나있습니다 어머니를 고치려고 노력도 많이해보고 제 찬란한 20대를 거의 다 보냈습니다알콜병동에 들어간지 벌써 두번짼데요... 저는 남들은 돈이있어야 한다는 예술쪽입니다 기회도 중요하고 나이도 중요했죠 대학졸업후 바로 필드로 나가기바쁜 애들사이에서 저는 어머니와 집안사정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머니를 쫓아다니며 말리고 솔직히 엄마가밉지만 홀로 저와 동생을 키우신것보면 자랑스럽기도하고 같은 여자로서 안쓰럽기도하고 복잡한 기분입니다 제가 장녀라서 돈을 벌어야하지만 이룰수 있는지없는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 꿈을 아직도 포기못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어머니 병원비와 생활비를 내고 있습니다 제 고민은 제가 행복할때 불현듯 엄마가생각나서 그 기분을 즐길수가없다는 거예요 좋은곳에 놀러가면 아 집은 엉망인데 나만 좋은데왔구나엄마는 이런거 못해봤을텐데 나만 이런거하고있구나.......라는생각도 들구요... 심지어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할때도 남자친구가 너무좋고 행복할때도 아 엄마는 힘든데 나만 이렇게 지내는구나 하며 알수없는 죄책감이들어 이내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마치 나는 행복하면 안되는 사람이야 하는 것처럼요 그냥 친구가 사주는 맛있는밥도 그 기분에 젖으면안될것같은기분이들어 겉으로는 좋은것같지만 속으로는 죄책감과 불행함이 교차하고있어요 싼 코트를 하나사도 엄마는 이런거 못입을텐데... 나만 이러는구나... 돈을 좀 써도 아 이러면안되는데 나는 분수에 맞지않게 과소비를 하는구나 아 이쓰레기같은 인성 하고 계속 반복입니다 남들은 이제 그만 생활에 보탬이되는 직업을 가지라고합니다 시도도해봤지만 저는 제꿈만이라도 제 것이고싶었고 또 그러고싶지않은 마음이 죄책감으로 돌아오는것일까요 하루하루 제가 너무 싫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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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관심과 걱정을 받는게 어려운 것인가요..안녕하세요. 올해 고3이 된 학생입니다. 저도 학생이다보니 입시 스트레스나 성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러나 요즘들어 이런 스트레스보다 저를 힘들게하는 것이 있더라고요... 코로나때문에 집, 학원만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랑 있는 시간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가족이랑 있는 그 시간, 그게 너무 힘들어요. 부모님이 작년에 이혼하시면서 저와 동생은 엄마와 살고있고, 시간날 때마다 아빠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입시 관련해서 크게 싸운 이후로는 엄마와 지금도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아요. 4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더 힘들게 하는건 동생같아요. 동생은요, 자꾸 힘들다고 하면서 작년부터 자꾸 자해를 하거나 갑자기 우울하다고 하고, 관심좀 끄라고 하면서 저를 피하더라고요. 물론 기분좋은 날에는 잘 있다가 살짝 기분이 나쁘기만 하면 저랑 있는게 너무 스트레스받는다고 제발 저리가라고 자기 방에서 나가라고 말하더라고요. 또, 자신은 엄마아빠나 언니나 다 가족으로 생각 안한다고 할 때면 상처받고요. 그래도 동생이 안타까워서 최대한 좋아하는거 같이 하면서 웃게해보려고 노력도 했고, 자해 중독되면 위험하니까 하지말라고 혼내보기도 하면서 제 나름대로 열심히 챙겼는데, 저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근데 더 슬펐던건, 동생이 힘들다고 하면 부모님은 귀 귀울여주고 최대한 안거슬리게 하라고 제가 참으라고 그러면서, 제가 힘들다고 하면 그만좀 힘들다고 말하라고 듣고있는 자기도 짜증난다고 내가 뭘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냐고 하면서 네가 큰딸이니까 제발 철 좀 들어라 그러는데 그게 너무 속상했어요. 동생이 하는 일에는 계속 신경을 쓰면서, 저랑 싸우게 되면 저보고 참으라고 동생 우울한거 모르냐고 그러는데, 그거 게속 듣다보니 미쳐버릴것 같아요. 저도 많이 우울하고요 저도 동생보다 몇개월 전에 동생처럼 심하게 자해해봤고요, 많이 힘들어서 속썩이며 운 적도 많고요. 솔직히 동생을 보며 느낀 동생과 저의 차이점은 동생은 부모님에게 밝혔고, 저는 안들키고 숨긴거 밖에 없어요. 이게 잘못된 행동이었을까요..? 저도 걱정 받고 싶은 나이인데... 저도 동생만큼 힘든데, 동생보다 더 힘든걸 수도 있는데, 저는 그냥 밝히기 싫어서 걱정끼쳐드리기 싫어서 최대한 웃으려고 하고 밝게다니려고 했는데 그런 저에게 계속 철좀들라고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행동할거냐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여기서 더 뭘 해야하나 싶어요. 저도 이제 19이고 곧 성인이니까, 첫째니까 더 의젓하게 있으려고 했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해도 항상 반응이 거의 없다싶이 하니까 제가 대체 왜 사나 회의감도 들고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아하는 행동을 해도 저를 좋아한다는걸 알 수 없으니까.. 더이상 집에는 얘기를 나누는 부모님도 저를 가족으로 여겨주는 동생도 없다보니 집에 있는게 너무 힘들어요...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께 말씀드려볼까 하다가도 자영업자다 보니 지금 코로나때문에 손님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시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 얘기만 꺼네면 가뜩이나 힘든데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아무데도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게다가 만나면 아직 대학도 안갔는데 취업얘기하면서 제가 원하는 과가 아닌 아빠가 말하는 과로 가라 이러시면서 자꾸 대입 문제로 다투다보니까 요즘들어 만나는것도 피하게 되고 있어요.. 친구관계도 좁아서 단톡방만 있을 뿐이지 사적으로 진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도 없고요.. 가족도 친구도 제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그냥 여기에 두서없이 쓰게 되었네요 저도 부정적인 말들보다 할 수 있다는 등의 긍정적인 말들을 듣고 싶었어요. 저를 걱정해주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근데 그럴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지금까지 공부응원조차 받아보지도 못했네요.. 그런 사소한 점들이 너무 서럽더라고요.. 응원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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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29살의 백조에요. 대학원졸업 후 구직 1년차인데 아직 무얼해야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전 집순이라 남친이랑 만날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영어공부나 책을 보는데 집에 계신 엄마께서 무심코 던지는 말씀에 종종 상처받아요. 전 삼남매인데 전 둘째딸이에요. 어릴적부터 유독 저에게 더 거칠고 막말하는건 일상이어서 참 많이도 싸웠어요. 같은일이라도 언니와 남동생에겐 관대했죠. 전 철이 빨리든 편이어서 그랬는지 제가 초3때부터 엄마가 집안 경제사정(좀 어려워요)과 물건을 집어던지는 아버지 흉 등을 저에게 계속 하셨어요. 그걸 어릴때부터 들은탓인지 전 돈이 무서워졌어요. 맨날 돈돈돈때문에 힘들다란 말을 들어서 정말 필요한 돈도 학창시절 요구하지못한적이 많아요. 엄마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나까지 그러면 안돼.. 이런생각으로 온갖 궁상은 다 떨며 다녔죠.. 오백원짜리 컵볶이먹을때도 죄책감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에요.. 대학교 수시합격 후 졸업 4년동안 부담 안드리기위해 남들 노는거 한번도 못해보고 오직 장학금과 과외로 청년기를 보냈어요. 과외잠깐 쉴때 돈이없어 어머니께 조금만 보태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고 받은게 기억나요. 언니랑 동생은 그냥 주면서 말이죠.. 여튼 사설이 길었지만.. 오늘은 정말 서러웠어요. 짐 구직중이고 과외도 그만둔지 오래라 수중에 돈이 없어요. 전 쉴새없이 돈과 공부를 했고 부모님께 손 벌린적도 없는데.. 요새는 정말 많이 힘들어요. 정신적으로요..그래서 지쳐서 과외도 손 놓은건데 엄마는 계속 절 비하하세요. 돈 만원이라도 받아갈적이면 다 늙어서 부모등꼴 빼먹는다고 그러세요. 부모님은 월급 백미만이라도 주는데 있으면 당장 일해라 이런식인데 직장은 알바가 아니잖아요. 전 제대로 들어가고싶은데 독촉만 엄청해요. 이런상황서 돈이없으니 집밖, 친구도못 만나는 지경에 엄마 생신이 왔어요. 궁상이지만..진짜 필요한거 쪼개서 몇달간 돈을 겨우모아 평소 갖구싶어하시던 워킹화를 사드렸어요. 그래서 부푼 가슴으로 드렸는데 표정이 떨떠름하신거에요. 계속 딱딱하다 여기가 하애서 때가 금방진다 이런말하시길래 그럼 다른걸로 교환할까요?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냥 신는다고하시고는 또 계속 여기가 어떻고 저기가 어떻고 하시는거에요. 그래서 다시물었죠. 맘에 안드시면 말씀하시면 다른걸로 교환해드릴게요. 라구요. 그랬더니 갑자기 짜증을 내시더라구요. 걍 신는다고 했는데 왜 계속 시비냐구요..그러더니 제 눈앞서 운동화를 집어던져버렸어요. 더럽게 그지같은거 사서생색낸다고.. 윽박지르듯이 말하시구요.. 가슴이 무너지는 거 같았어요. 별거아니지만..후져보일지라도.. 짐 제 상황서는 최선으로 모아 엄마가 좋아할 모습을 보며 산건데 돌아온건...상처였어요. 첨엔 내가 언제생색냈냐고 얘기했는데 계속 절 쫓아와 폭언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엄만 날 진짜 싫어하는구나. 증오하는구나. 다시 한번 느꼈어요. 전 엄마힘들까봐 초딩때부터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집안일도 끝없이 도왔는데 그런 제게 자기한테 너무 못한다고 언니만큼은 해야한다고 매번말해요. 언니는 직장인이니 종종 용돈드리는데 저도 그래야한다는 식으로요. 전 많은걸 바란건 아닌데.. 그저 힘들때 작은 위로해주고 기쁠때 같이 기뻐해주는 그런걸 원한건데.. 너무 슬퍼요. 요즘따라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구질구질한 늪에 빠져 눈을 안뜨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그냥..위로가 듣고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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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연을 끊고싶어요.전 띠동갑 오빠와 9살 차이나는 언니가 있어요. 전 어려서부터 하고싶은건 거의 참고 살아왔고 가정내에서 늘 외톨이고 따돌림당했어요. 용돈은 커녕 급식비 받아갈때마다 너한테 돈이 너무 많이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살았고, 초등학교땐 절 엄마대신 키워주신 할머니의 치매를 돌봐드려야했고, 중학교땐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밥반찬마저 아빠 술안주로 뺏기고 살았어요. 제가 먹을 수 잇는건 라면뿐이었죠. 고등학교땐 미대입시 하고싶어서 엄마께 말했더니 돈없다고 하셨고, 언니랑 오빠가 자기들은 하고싶은걸 못하고 살았으니 저는 하고싶은걸 하게 해주겠다며 한달 36만원씩 학원비를 내줬어요. 사실 그걸론 부족해서 제가 알바해가며 특강비에 재료값 등등 벌었어요. 언니오빠에게 참 고마웠지만 오빠는 중학교 중퇴, 언니는 고졸으로 대입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고 돈을 내준다는 생색과 마치 자신들의 자존감을 저의 무능함으로 채우려는 듯 늘 무시했어요. 그렇게 가장 중요한시기에 멘탈공격을 당했어요. 그때 겪은 우울증이 제 20대 초반을 갉아먹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인이 되고나서 우울증을 견뎌보려고 해외여행을 갔다왓고, 자격지심에 쩔은 아버지에게 김치전싸대기를 맞았어요. 늘 폭언과 망언을 일삼는 아버지, 무관심한 어머니, 저를 위하는척 망언하는 언니와 폭군같은 오빠에게 저는 너무나도 실망하고 지쳐서 1주일간 집을 나갔는데, 그동안 지냈던 친구집은 너무나도 활기있고 유대감있어보였어요. 이젠 제가 돈을 모아서 드디어 독립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 차로 이동하면서 인생얘기를 듣는데 직업도 없었던 20대 중반, 순간의 사랑으로 결혼을 하고 계획없이 아이를 낳고 부부싸움에 아이는 우울증, 할머니는 치매... 그 얘기를 가장 막내인 저에게 하는 아버지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가슴아프고 복잡했어요. 그 우울증이던 아이가 결국 폭군이 돼서 동생들을 괴롭혀 왔고 그 동생들은 무관심과 방치속에 살아왔는데 말이죠. 저는 아버지가 제게 망언과 폭언을 일삼고 저에게 인생 하소연을 하는게 너무 답답하고 싫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사랑하지만 더이상은 함께하고싶지 않아요. 졸업하면서 개명과 성형을하고 전화번호도 바꾸고싶습니다. 앞으로 2년 남았지만요. 2년 뒤 취업하면 언니오빠에게 학원비를 갚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고싶어요. 그냥.. 어디다 얘기할 곳도 없어서 이곳에 한풀이를 해보네요. 가정사 복잡한 친구들이 왜 그렇게 힘드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단정지어 말할 순 없지만 저는 너무너무 힘들었거든요. 가족밖에 없다지만 저는 가족을 곁에두고싶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제 긍정적인 인생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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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스물 다섯, 길을 잃었습니다저는 25살 여자 입니다 저희 가족은 엄마 아빠 언니두명 아래 막내딸인 제가 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는 8살 때부터 하여 떨어져 사신지 어연 17년정도 되었네요 제가 정말 어렸을땐 부모님은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시던 평범한 부부이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는 건축일을 하시면서 집을 나가셨고 어머니는 세탁소를 하시다 교회에 다니시면서 세탁소를 접으시고 조금씩 조금씩 다른 일을 이것저것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년에 세번 네번 오시던걸 제가 커가면서 일년에 세번 두번 한번.. 안오실때도 있고 점점 줄었습니다 가족여행은 정말 한 세번 가본것 같네요 아버지는 생활비도 잘 보내주지 않고 보증을 잘 못서 엄마가 세탁소하며 산 아파트도 날리셨죠.. 어머니는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시면서 교회에 의지하였고 건축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외도를 자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렸던 그때의 세딸들은 워낙 순하고 착한 아버지인걸 알기에 외도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였던 경우가 대다수 였습니다 행복하고 싶었던 것 이겠죠 어머님은 교회를 일처럼 다니셨습니다 남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런 교회입니다 제가 8살이 되던 해부터 딸셋과 아빠까지 엄마에 의해 다 같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저는 23살까지도 어머니의 설득으로 교회를 15년정도 다녔고 언니들은 물론 아버지도 어머니의 설득과 강요에 못이겨 저와같이 15년을 참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무엇보다 일순위로 생각하시는 어머니의 행동과 마인드에 딸들은 물론 아버지도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지금은 현재 저와 둘째언니 아빠가 교회를 끊은지는 2년정도 지났고 어머니는 많이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동안에 가족들은 힘들게 했던것도 많이 후회 하시기도 하시구요 하지만 교회를 포기할 생각은 없으십니다 이게 저희 집에 많은 변화를 불러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 17년동안 어머니는 교회에 모든 인생이 있으셨습니다 그렇기에 변변찮은 직업도 없으십니다 배움을 좋아하시며 하시는 것들을 항상 열심히 하시고 일도 참 잘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세상 물정모르는 아기가 된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딸들을 사랑하고 아끼시지만 능력이 없기에 딸들에게 해줄게 많이 없으십니다 저는 17살 고등학교 1학년때 부터 고깃집 알바를 21살까지 고삼때 빼고 4년동안 했습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때부터 용돈을 거의 받지 않았고 스무살 성인부터는 모든 생활비는 제가 벌어 썼습니다 대학 처음 들어가는 등록비만 받은것 같네요 막내딸 이기에 초 중 고 때도 항상 언니들이 입던옷 입던 신발 입던 교복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정말 무엇하나 받은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는 혼자 벌어 생활했던것 같습니다 당연히 가끔씩은 부모님의 도움도 있었겠지만요 저는 지인의 권유로 21살부터 네일아트를 배웠고 샵에들어가 ***이 3년을 일하고 배워 24살 제 가게를 작게 차렸습니다 아버지가 인테리어에 보태라며 준 백만원 빼곤 다 제돈으로 이뤄낸 가게죠 지금은 월 사백에서 오백 정도 벌면서 학자금 대출과 어머니께 사드린 경차 값 샵인테리어 비용 등 열심히 갚고 있습니다 저는 제 나이에 할수 있는건 다 하는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제게 많은것을 바라십니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도 여행을 가도 모든 비용은 제가 부담하며 가끔씩 용돈도 드리고 사달라고 하시는게 있으면 왠만하면 다 사드립니다 이번에 연금도 들고 싶다고 하시는걸 여유가 되지 못해 못해드린게 자꾸 신경이 쓰이네요 그래서 한창 심하실 땐 엄마를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부담이 될때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래도 좀 덜 하시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왜 막내딸인데 혼자 그러냐 언니들은 뭘 하냐 하십니다 첫째언니는 우선 31살 임에도 직업이 없습니다 사람은 착한데 엄마를 닮았나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입니다 밥값 만원 이만원이 없어서 동생들에게 항상 얻어먹죠 그래서 언니라고도 잘 안부릅니다 미안하지만요.. 일을 하라고 해도 하겠다고 할거라고 한지 11년 지났네요 그래서 엄마도 부담인데 첫째언니까지 돌봐야 할것 같아 두배로 부담스러울때도 많습니다 일머리가 없고 사회성도 없고 능력도 없고 .. 다 없네요 그나마 이쁘게 생겨서 어디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 입니다 둘째언니는 안과 수술방에서 일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도 힘들땐 둘째 언니가 많이 도와주죠 하지만 월급이 많은것도 아니고 언니도 이제 결혼자금을 모으느라 빠듯하게 생활합니다 우선 저보다는 덜 벌기에 제가 항상 더 부담하려고 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아버지는 지금 현재 다른여자랑 산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여자랑 계속 같이 사실 생각이신것 같구요 처음엔 심증만 있었고 두번째는 아버지 지인이 어머니께 귓뜸을 해주어 저와 엄마 아빠 셋이 만나 얘기해보니 처음엔 발뺌 하다가 다른 여자랑 사는게 맞다고 하셨네요 많이 울기도 하고 미워도 하고 연도 끊으려고 하였지만 자식과 부모간에 쉽게 끊어지진 않더군요 그래도 한번 심한말 하며 싸웠더니 조금 충격을 받으셨나 지금은 딸들에게 잘하려고 연락도 많이 하시고 추석에도 맛있는거 사주겠다며 오시기도 했네요 말을 하다보니 정말 길게 얘기했는데 어찌 좋은 얘기는 하나도 없네요 가정사라는게 다 들어보면 누구하나 없는게 없지만 스물 다섯이면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많이 감당하기 힘드네요 .. 조만간 부모님이 이혼을 하실것 같습니다 이젠 두분이 같이 사시는건 바라지도 상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우리가족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자꾸 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더 성공 해야하는데 더 돈 벌어야 하는데 하며 제 자신을 탓하며 마음이 병 드는것 같네요 3년만난 남자친구네 부모님을 보면 자괴감도 들고 네일샵을 하다보니 사람을 자주 만나 얘기하는데 나만 이렇게 사는것 같고 괴로울때가 많네요 다들 좋은 얘기만 하는거라는 걸 좋아보이는 사람도 다 아픔이 있다는 걸 그 사람들도 나를 보며 같은생각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네요 쉽지 않네요,, 앞으로의 저의 어깨가 얼마나 더 무거울지 얼마나 더 악착 같이 살아야 하는지.. 그냥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고 목표가 없는 사람같네요 어릴땐 부족한 것 투성이라 그저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나름 지금 내 나이 또래보다 잘 벌고 있는데도 절대 행복하지 않다는게,, 부자가 되고 싶었던건 그저 돈이 벌고 싶었던 게 아니라 행복하고 싶었던 걸까 싶네요 그래서 삶의 목표가 사라졌나봐요 부자가되고 싶었고 그게 행복하고 싶었던 거라면 행복해야 꿈을 이루는건데 그 행복해지는 길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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