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입니다. “미소띤 모습과 재치있는 입담, 예의바른 행동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기가 높은 학생임.“ 이 문장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적어주신 행동 특성의 첫 문장입니다. 초중고에서 늘 반장을 맡고 코로나 시국에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공대에서 최초 여자 학생회장을 맡아 학과를 이끌기도 했답니다. 사람들이 저로 인해 행복해하고 저의 웃음이 전염되는 걸 보는 게 제 취미이자 삶의 의미였어요. 아마도 사랑을 넘치도록 주신 엄마와 아빠가 계시고 이따금 장난을 쳤지만 매 순간 귀여워해주던 나이터울이 큰 오빠들 두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맑고 밝음을 지켜올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땐 많이 어렸고 아빠가 엄마의 몫까지 전부 다 해주려하셨으며 친구들도 매우 조심히 또 매우 가까이에서 저를 지켜주었기에 잘 이겨냈어요. 아빠는 본업도 하시면서 집에 와 교복을 하얗게 빠는 법을 연구하시고 요리책을 사 모으시고 재봉틀까지 배우셨답니다. 매주 친구들을 데려와 바베큐 파티도 열게 해주셨어요. 작은오빠와 큰오빠는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쪽 이복오빠들이었어요. 그럼에도 추석마다 늘 아빠께 인사드리러 오고 엄마 묘에 매번 왔고 저를 사랑해주었죠. 대학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대외활동에 대회와 학생회 모임들에 나갔는데,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려다 보니 더 각성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을 한꺼번에 하고 얻을 수 있었으니 제 세상이 따로 없었답니다. 300km라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로 아빠를 자주 보러 가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매일매일 아침저녁마다 전화를 하고 일상 사진을 서로 공유했어요. 그치만 아빠는 제게 엄마와 아빠 역할을 모두 하느라 친구분들과 연락이 뜸해졌었고 아마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미안해 아빠 한편 고등학교때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어느날 작은아빠께 연락이 오더라구요. 아빠가 대학병원에 있다고. 들어보니 대장에 종양이 발견되었대요. 그런데 너무나도 다행히 병원에 일하러 가셨다가 대장암 검사 키트가 있어,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 했던 검사에서 발견되어 초기 대응을 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마음졸이며 살았는데 제가 대학가고서부터는 아빠가 아이스크림도 끊으시고 독하게 식단이며 운동을 하시더라구요. 기뻤어요. 타지로 대학을 와서 열심히 힘이 닿는데까지 살았는데, 그게 아빠의 원동력이었겠죠. 제가 신문에 나고 인터뷰를 하고 대기업 최연소 인턴을 하는 걸 여기저기 자랑해주는 아빠가 있어서 행복했어요. 지금은 제가 스스로 이렇게 어필하지 않으면 해줄 이가 없네요. ㅎㅎ 확실한 건 아빠도 제 원동력이었어요. 3학년때부턴 경제적 자립을 해보고 싶어서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고 공강과 주말엔 알바를 해보았어요. 그렇게 주말 알바를 하던 중.. 아빠의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많이 아팠을 우리 아빠의 마지막을 제가 지켜주지 못했죠. 그렇게 아빠를 보내주지 못하는 마음과 상실감, 너무나 많은 상속 처리를, 그 당시 저를 한없이 사랑해주던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휴학을 하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보살피고 해결해주었어요. 웃음을 되찾아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렇게 한학기를 상속처리와 시골집 청소로 보내고, 남자친구와 저는 각자의 대학교로 복학했어요. 남자친구는 학교생활에 전념하고 싶다며 헤어짐을 원했고 쿨하게 잘가라고는 못했지만 열심히 이별했어요. 학교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일년여의 학교 생활을 마쳤는데… 오빠들의 소식이 들려왔어요. 큰오빠가 자살을 했대요. 아빠 돌아가시고 일주일 뒤에 따라갔는데 제가 너무 충격받을까봐 작은오빠가 말하지 못했대요. 우리 작은오빠도 정말 힘들었겠죠… 그리고… 자세한 건 모르지만 작은오빠가 구속될 거래요. 제 하나뿐인 가족이고 평생을 사랑한 오빠이기에 저는 야속하게도 걱정만 되어요. 예전에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편의 가족들에 관한 책을 읽고서, 안타까우면서도 편견에 맞서는 건 어쩔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제 친구들도 그럴 것 같아서 저와 제 상황을 제 친구들에게 짐 지우고 싶지 않아서 숨어버렸어요. 이렇게 지금까지의 제 상황에서 제가 너무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근 한달간 친구들의 연락을 안 받고 살아가고 있어요. 집에서 짱구만 틀어 놓거나 잠을 자요. 배달 음식을 먹고 살 찔까봐 토하기도 해요. 친구들에게 아무리 전화가 와도 다 방해금지 모드로 안 봐요. 고맙고 미안함의 눈덩이가 계속 짓누르는데 이제부터 연락을 돌리면, 아마 그게 제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아서 더 멋진 말로 포장해 돌리고 싶어서 미루게 되는 것도 있어요. 지금까지 너무나 반짝이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젠 더 반짝일 수 없을 것 같고 반짝일 이유가 없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제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버렸고 오빠들도 너무 안타까워요. 엄마와 아빠 곁으로 가면 편안할 것 같아요. 엄마랑 아빠랑 큰오빠 라는 호칭이 앞으로 제 입에서 나올 일 없다는 게 참 아파요. 내가 누구보다 많이 사랑해줄텐데, 정말 좋은 딸이 될텐데 이렇게 빨리 갔어. 인스타 릴스에 가족콘텐츠가 올라오면 나는 너무 한없이 부러워. 보고싶어 부르고 싶어 엄마 아빠 오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님들께 제가 용기내어 상담센터에 간 적이 있는데, 오히려 제가 더 이야기를 들어드리고ㅠㅠ 종교를 권유하시고 그러길래 발길을 끊었거든요… 원래 그런 치유도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