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답변
가족
항상 나에게 잘해주는 엄마, 항상 엄마에게 차가운 못난 아들이렇게 적으려 하니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선 오늘 있었던 이야기부터 하자면..
저는 여느때처럼 집에서 대학교 온라인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주방에 가보니 엄마가 저를 위해서 파인애플을 자르고 계시더라고요.
식탁에서 파인애플을 같이 먹고 나니,
엄마가 저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면서 모바일 티머니를 후불에서 선불로 바꾸는걸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저는 모바일기기나 컴퓨터를 잘 다루고, 엄마는 재차 알려드려도 습득이 잘 안되고 어려워 하셔서 자주 요청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선불로 설정을 하고 보니 수수료가 이전에 사용하던 방식보다 더 청구가 되는 방식이더군요. 엄마는 그 수수료가 전에 쓰던 방식이 더 나오는 줄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불필요한 일을 하게 된걸로 "엄마 이거 조금만 알아보면 알 수 있는거잖아, 왜 안 알아보고서 이렇게 일을 만들어" 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엄마에게 아주 작은걸 도와주는걸로도 항상 생색을 내고, 귀찮아하고 짜증을 냅니다. 왜그런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짜증을 내고서도 엄마는 웃으시면서 "엄마는 이런거 어려워하잖아~ 엄마좀 도와줘~"하면서 제 기분을 누그러뜨리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 엄마의 말에도 저는 계속해서 짜증을 냈습니다. 무려 3년전에 있었던 이와 비슷했던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그때도 이런 비슷한 식으로 귀찮은 일이 커진적이 있지 않느냐 하면서 말이죠. 여기서부터 엄마의 감정도 터져나오며 울며 말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나는 너가 부탁하는 어떤것도 항상 기꺼이 하면서 도와주지 않니. 살림이며 먹는것이며 너가 해달라는것은 자다가도 일어나서 해주는데, 너는 너가 잘하는걸 부탁하는데도 이렇게 선심쓰듯이, 생색 내면서 도와주고, 그마저도 짜증을 내니? 이런거 엄마가 하려고 하면 매번 헤매는거 너는 10분의 1도 힘 안들이고 바로 해결하잖아. 엄마가 밥하고 살림하는것도 너가 하는것보다 힘 안들이고 너에게 하는것처럼 너도 엄마한테 그렇게 해주면 안되니? 엄마가 그렇게 당연하게 했던 것 처럼 이제는 너도 엄마를 돕는 것을 당연하게 할 수 있어야돼. 그게 가족이야."
처음엔 이 얘기를 들을 때 까지도 저는 짜증으로 차 있었다가, 듣고보니 엄마의 말이 틀린것이 단 하나도 없어서 엄마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맞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한탄하듯이 "엄마 말이 맞아. 나는 왜 이럴까..."라고 자책했습니다.
3년전에 모두 해결된 사건을 되풀이 해서 말하는것이 엄마에겐 특히 마음이 아팠나봅니다.
엄마는 계속해서 말을 하셨습니다.
"그건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야. 100미터를 가려고 하는데, 한걸음도 가지 않았으면서 왜 100미터를 못가고 있냐고 한탄하는거랑 같아. 엄마는 항상 너의 눈치를 봐야해. 엄마는 그렇게 27년동안 너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어.
그리고 너는 왜 좋았던 기억들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365일 중 안좋았던 단 하루, 단 한시간을 사진찍어놓은 것 처럼 기억해서 좋았던 다른 모든 날을 무산시켜버리니? 엄마 너무 속상해. 이럴 때마다 아 아직도 내가 고개를 숙이고 내려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지쳐. 외로워."
여기서 저는 이런 말을 엄마에게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엄마는 무슨 할 얘기가 있으면 해 봐라, 할 얘기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라고 말하시지만 저로서는 모두 맞는말이고, 모두 저의 잘못이니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기운이 빠지고 하체에 피가 안통하는듯이 다리가 저리면서 저는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이렇게 얘기가 끝나고 나자 엄마는 옷을 챙겨입으시고 울음을 참으시면서 급하게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렇게 엄마가 나가실 때 까지도 저는 마치 100살먹은 할아버지처럼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왜이럴까요? 어릴 떈 그저 온 세상이 엄마뿐이었고, 잘 때도 엄마의 손끝이라도 닿아야만 잠들던 제가, 지금은 엄마가 부담스럽고, 물질적,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채 있는 제가 부끄러우면서도, 얼른 독립 하고싶고.... 또 엄마가 저와 가족을 위해 헌신한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에게 퉁명스럽고, 엄마를 울게 만드는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제 생각 한 구석에 제가 없어지면 이런일은 일어나지 않겠다 라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옵니다.